마음속에 어떤 영화가 재생되건 간에, 경험을 수용하려는 바로 그 의도는 주의를 깊게 하고 가슴을 부드럽게 만든다. 나를 통해 흘러가는 실제 경험의 물결과 더 친해질 때, 마음속에서 계속되는 논평은 나를 놓아주고 몸의 긴장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타라 브랙(Tara Brach)-
나이 50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없다. 50에 미리 준비하면 이후의 삶의 변화에 자신이 좀 덜 당황할 수 있다. 자신에게 밀려오는 삶의 파도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타고 넘을 수 있다. 바다는 파도가 일어나는 곳이다. 파도는 잔잔할 때도 있지만, 보이는 것을 모두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오는 성난 파도도 있다. 바다를 아는 사람들은 겸손하다. 바다가 보여주는 파도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안다. 언제 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바다라고 믿는다. 파도의 흐름을 타지 않고 고기를 잡으려다가 먼저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바다에 순응하며, 파도를 잘 타야 산다는 것을 안다. 순응(順應)은 나약함이 아니다. 본질을 알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진정한 용기다.
자기 자신은 몸 관리도 잘하고 있고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모님, 배우자, 자녀, 형제, 친구들이 건강하고 자신과 잘 지내고 있다. 사업도 실패 없이 잘 되고 있다. 직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지위와 명예도 누리고 있다. 노후 준비도 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운이 좋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좋은 일만 일어날 거야’, ‘인생 별거 있어? 닥치는 대로 사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과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50이 되면 인생의 높은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기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조건을 한 번 재설정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50이라는 시기는 자신이 안정적으로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크게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몸의 신체적 파도, 마음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욕구와 갈망의 파도가 몰려온다. 배우자와 자녀들,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의 관계의 파도가 몰려온다. 자신이 하는 일과 성취에 대한 파도가 몰려온다. 자신의 삶에 어떤 파도가 몰려올지 미리 걱정하면 더 불안하다. 삶의 파도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때마다 알고 대처하기는 어렵다. 자신에게 오는 작은 파도 하나 정도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맞서서 견디면 된다.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면 된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에게 오는 삶의 파도는 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은 혼자의 삶이 아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상황도 변한다. 주변 사람들의 파도를 자신이 받고 자신의 파도를 주변 사람들에게 넘겨준다. 이게 인생이고 삶이다.
삶의 파도는 언제 어디서 밀려올지 모른다. 자신은 ‘잘살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가족이, 친구가 큰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일상의 리듬이 깨진다. 자기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파도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자신만만했던 자신과 ‘사는 대로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던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제 두 번째, 세 번째 연속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보기만 해도 두렵고 불안하다.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나이 50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많아지는 시기다. 자신에게 예고 없이 다가오는 또는 올 것이라고 짐작되는 파도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의 파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타고 넘을 수 없을까?
자신이 파도에 맞서지 않고 파도를 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먼저 어떤 파도를 만나더라도 ‘내가 사는 동안 만나야만 하는 친한 친구가 찾아왔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그 반대로 했다. 파도에 맞선 것이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괴로움의 파도가 밀려온 거야?’라고 일어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자신의 몸과 마음은 바깥에서 밀려온 파도를 맞고 나서 요동치고 있다.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보지 못한다. 삶의 파도를 맞은 원인을 찾으려고 애쓴다. 거절과 배신을 한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 복수심의 파도가 몰려온다. 몸의 건강을 방치한 자책감의 파도가 몰려온다. 자신에게 일어난 첫 파도의 원인을 찾아 따지고, 그 파도에 맞선다. 자신이 저항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 세 번째 파도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나는 40대에 밀려온 내 삶의 파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했다.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경험이 있다. 나는 파도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파도를 타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파도 타는 방법을 배웠다. 한순간 나는 파도가 두렵지 않았고, 어떤 파도도 타고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겸손함이 부족했다. 나는 50대 중반에 느닷없이 밀려온 파도에 또 한 번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뻔했다. 나는 간신히 일어서서 다시 파도를 타고 넘었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온 삶의 파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체험했다. 일단 일어난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자신에게 밀려온 파도를 다시 밀어낼 수는 없다. 파도가 자신을 넘지 못하도록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는 없다. 파도를 자기 자신의 삶의 동반자라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파도와 같이 삶의 춤을 출 수 있다.
바깥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넘기 위해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자기 자신 안에 일어나는 파도를 탈 수 있어야 한다. 바깥에서 밀려온 파도는 자기 자신 안에 다시 파도를 일으킨다. 자기 자신 안의 파도를 잘 타고 넘을 때 바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매 순간 자기 자신의 안에서 그 파도를 만나고 있다. 그 파도의 실체를 알면 파도에 쓸려가지 않고 파도를 좀 더 수월하게 타고 넘을 수 있다. 나이 50이 되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파도의 실체를 아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안에는 생존을 위한 파도가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그 파도는 바로 몸에서 느끼는 신체감각이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정이고 기분이다. 자기 자신 안에서 쉼 없이 각본을 쓰고 또 쓰는 생각이다. 자기 자신 안의 파도에는 배가 뒤틀리는 느낌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있다. 지끈거리는 머리,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한 느낌도 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올라온다. 반드시 응징하고 싶다는 충동도 있다. ‘나는 실패자이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나는 운이 없는 사람’ ‘나는 싸울 줄도 모르는 바보!’라는 생각도 있다. 자기 자신 안에는 실시간으로 일렁이는 파도가 있다. 일어나는 파도를 낯설게 느낀다. 자기 자신 안의 파도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사람이 외부 자극을 받았을 때, 자신의 내면 경험을 통제하기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큰 이득을 준다고 한다. 심리적 수용(psychological acceptance)을 하면, 통제할 때보다 개인의 정서적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저항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인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삶의 질도 심리적 수용을 잘하는 사람들이 더 높게 나타난다. 즉 개인의 건강과 안전, 정서적 웰빙(well-being), 삶의 질, 회복탄력성의 수준이 높아지고, 부정적인 심리적 자동반응(분노, 불안, 혐오 등)을 덜 한다. 심리적 수용은 만성 통증이나 불안장애 치료 등 심리 치료 분야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심리적 수용은 경험을 회피하기보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온갖 자극이 자신의 내면에 접촉할 때 몸과 마음에서 신체감각, 생각, 감정, 욕구, 갈망, 충동이 일어난다. 이 순간에 어떤 것도 바꾸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을 허용하고 지켜보는 것이 심리적 수용이다.
자기 자신 안의 파도를 밀어내거나 막지 않고 친구처럼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바깥의 파도를 좀 더 수월하게 타고 넘을 수 있다. 나이 50을 넘기면 몸도 마음도 더 굳어진다. 자기 자신 안의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유연성이 점점 더 떨어진다. 자신의 바깥의 파도를 맞이하는 게 두려워 피해 달아나기만 한다. 자신의 삶은 활기를 잃는다. 나이 50에는 자기 자신 안의 파도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다. 바깥의 파도를 담담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다. 사소한 파도에서부터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충격적인 파도까지 자신에게 닥쳐올 파도는 오게 마련이다. 자신이 잠시 정신을 잃고 파도에 넘어질 수도 있다. ‘그래 네가 왔구나!’ ‘내 안에 어떤 파도가 일어나는지 피하지 않고 지켜볼게!’라고 의도를 품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자지 자신 안에 일어난 파도를 알아차린다.
나는 ‘내가 좀 더 일찍 내 안의 파도를 알아차리고 타는 방법을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나마 40대와 50대에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라는 감사함도 있다. 삶을 사는 방식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겉모습과 다르게 평안하게 잘 사는 사람도 많다. 겉으로 보기에 부럽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삶의 파도에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다. 모든 파도를 완벽하게 타고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한 파도를 만나 잠시 허우적댈 때도 있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파도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일어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자기가 자신의 내면 파도를 알아차리고 현명한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Tip!) 삶의 파도를 타는 기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탈 줄 알면 바깥의 파도도 탈 수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도는 내면의 경험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각, 생각, 감정, 욕구, 기억, 이미지이다. 이 내면의 경험을 매 순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기술을 연습하면 바깥의 파도를 타고 넘는 힘이 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