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도 공연 신청했어요.” 쿨하기 그지없던 줌바선생님의 말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처음은 아주 쉬웠다. 줌바댄스에 애정이 가득했던 우리는 큰 고민 없이 UJ크루에서 주최하는 줌바파티에 가기로 했다. 하루 신나게 놀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공연에 나가기로 결정됐을 때만 해도 부담은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에겐 무려 두 달이나 되는 시간이 있었다.
줌바댄스 수업 후 이어진 30여 분의 공연 연습은 처음엔 꽤나 재밌었다. 우리의 실력을 고려한 선생님의 곡선정은 단순했고 군무에 어울리는 쉬운 동작이 주를 이뤘다. 문제는 거울을 버리고 벽을 보기 시작했을 때 발생했다. 연습 후 한 달 남짓 지났을까. 선생님은 “이제 거울 말고 벽을 보고 해 보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벽과 함께한 우리의 첫 번째 춤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그 과정은 여전히 동영상으로 남아 웃음 제조기가 됐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개인 연습을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며 안무를 다시 외우고 연습했다. 망신스러운 동영상 덕분인지 주말 동안 안무를 전부 외울 수 있었다. 역시 실력이 느는 데는 긴박함이 최고다. 멤버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까? 다음 연습에서 벽을 보고도 제법 나아진 모양새로 춤을 출 수 있었다.
다음 문제는 공연 시 앞줄과 뒷줄을 정할 때 일어났다. 선생님은 키와 여러 가지를 고려해 자리를 정해주셨다. 나는 앞줄 오른쪽 끝에 섰는데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영 불안했다. 그러던 찰나 공연 멤버가 한 명 줄어들게 되어 뒷자리가 비자 나는 재빨리 뒷줄로 갔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H언니는 앞줄과 뒷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생님 바로 옆 가운데 자리가 좋다고 했다. 단 한 번의 짧은 공연이지만 그렇게 모두들 선호하는 자리가 달랐다.
이외에도 입장 방법과 마무리, 의상 등 공연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유치원 재롱잔치 이후로 처음 서보는 무대는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의상을 꼭 맞춰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막상 공연 날 다른 팀들의 눈에 띄는 의상을 보니 좀 더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대 위에서 줌바댄스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나의 영어 선생님 A는 경쟁적인 대회인지 물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럼 난 멤버에서 탈락했을 거야. 이 공연은 오직 즐기기 위한 거야.”라고 답했다. 그때 문득 정말 공연 준비를 즐기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 사실 공연을 준비하며 줌바댄스에 대한 애정이 식고 있음을 느꼈다. 확실히 아마추어 공연조차 준비와 노력면에서는 프로들의 그것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랐다. 마흔 줄에 막 들어선 아직 쌩쌩해야 할 것 같은 무릎이 말썽을 일으켰을 때는 진정으로 공연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공연의 그날, 줌바파티 당일 그동안의 불안이 무색할 만큼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멤버들과 차를 나누어 타고 소풍 가듯 먹을 것도 가득 실어, 공연장인 수원돔나이트에 도착했다. 웃기게도 나를 포함한 멤버 중 몇몇은 나이트가 처음이었다. 그렇다. 줌바댄스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나이트 한 번 안 가본 이들도 춤추게 한다.
공연 전 복도에서 미리 동작을 맞춰본 우리의 열정에 비해 공연 시간은 짧았다. 연습할 땐 그토록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왜 이리 짧은지. 두 곡을 했어야 했다는 동료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한 곡도 겨우 연습했는데 말이다. 자신감이 돌아온 걸 보니 공연이 끝난 게 맞았다. 공연이 끝나자 ‘파티’가 남았다. 파전에 골뱅이소면까지 맛있게 먹고 공연의 감동을 나누는 시간, 몇 년을 함께한 줌바 동료들은 잔뜩 신이 나있었다. 사람들이 무대 위의 자신을 보고 따라서 춤을 추는 게 감동적이고 특별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음엔 두 곡을 하자.”는 말에 웃어 보였지만, 이제 나의 줌바 공연은 끝이다. 신났지만 어려웠고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파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재밌었냐는 남편의 말에 “좋았지만 두 번은 안 할 거야.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래 몸치의 도전기는 한 번으로 끝내야지’라고 다짐했다.
공연 후 한 달이 지났다. 왠지 공연을 한 번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곡도 가능할 것 같은 마음이 슬며시 드는 건 기억력이 나빠서일까. 혹시 다음번 줌바파티에서 나를 만나면 부디 이 사실을 모른 척해주길 바란다. 원래 다짐은 수정도 하라고 있는 거니까.
마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좋은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