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뿌둥한 몸을 둥글거리며 생각했다. 오늘 운동은 쉴까?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오늘을 위해 있는 것 같은데... 억지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와 보니 창밖으로 하얀 눈발이 날리는 게 보인다. 올해의 첫눈이다. 이렇게 되면 운동을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눈 오는 날 지하주차장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아파트 GX룸에서 운동하는데 이걸 빼먹으면 너무 게으르다.
요가를 하면서 보는 창 밖 풍경은 황홀했다. 유리창 안에서 보면 세찬 눈발도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 같다. ‘오겡끼데스까’라고 외쳐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다. 예쁘지만 차가울 눈을 보니 GX룸 내부가 괜스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갈 무렵 눈발이 더욱 세차졌다. 차를 가지고 나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본 베란다 쪽 창에 고드름이 보인다.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도 눈은 아직 그치지 않았다. 결단이 필요한 때다. 사진반 단톡방에 폭설로 수업에 불참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너무 아쉽다. 다음주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할텐데 막내가 빠지려니 죄송하다. 아쉬움이 남아 자꾸 창가를 바라보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사진반 샘이다. 시간이 남으니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다. 이 폭설 속에 수업 못 올 초보운전자인 제자가 염려되어 데리러 온다는 샘의 다른 표현이리라. 냉큼 감사하다며 따라나설 준비를 했다. 사실 전시회전 마지막 수업에 꼭 가고 싶었다. 전시회 준비로 누구보다 바쁠 샘이 시간이 남을 리 없었지만 나는 샘의 호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싶었다.
샘의 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아까도 이만큼 눈이 왔다면 아무리 수업에 가고 싶어도 괜찮다고 거절했을텐데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차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가 찾아왔다. 끌차 가득 전시회 준비에 사용할 액자를 싣고 교실로 향했다.
유리창 밖 눈발은 더욱 거세졌지만 전시회를 준비하는 우리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유리창안으로 한걸음 들어선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시회 준비하랴 수업 들으랴 차도 한잔 마시랴 2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창 밖 너머로 보이는 나무가 짊어진 커다란 눈의 무게는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오후 5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늘에 어둠이 가득 내려앉았다. 나무와 신호등에 쌓여있는 하얀 눈의 무게는 마치 재난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퇴근시간이 임박해지고 있음에 마음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다. 설경 속 나무는 하얀 눈을 한 짐 가득 지고 있었고 나는 초조함을 한 짐 가득 지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베란다 이중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집을 나서기 전보다도 더욱 하얗다. 세찬 눈보라가 여전했고 온 세상을 가득 채운 눈은 도로 역시 하얗게 지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창 안으로 한걸음 들어온 내 마음은 다시금 평화로워 졌다. 7년 전 신축아파트로 이사하며 2중창의 기술력에 놀랐다. 천둥번개가 쳐도 비가 내려도 소리를 막아주는 든든한 벽인 마법의 유리창. 그 힘을 오늘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유래 없는 폭설이라는 눈도 유리창 안에서 보면 예쁘기 그지없는 겨울 왕국 속 동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유리창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연의 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유리창 속에서 나는 일상을 바쁘게 영위한다. 하지만 유리창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연이라는 이름의 전쟁에 직면한다.
얇고 얇은 유리창 심지어 투명하기 까지 한 유리창 안과 밖의 세상은 오늘도 이렇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