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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즈쭈꾸미 Oct 21. 2023

마흔 청구서

마흔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서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18세 ' 노래에서도 인정해주던 젊음이 있던 그 시절, 마흔 살이 엄청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시절 마흔이 너무나 많은 나이 같아서 그쯤 되면 그만 살아도 될 거라고 믿었다.


세상에 말도 안 된다.


신라 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40살이었다는데...

막상 마흔이 넘고 보니, 마흔은 별로 가진 것이 없다.


서점에 가면 '마흔 수업' . '마흔에 읽는 니체' 등 마흔 살이 되면 어느 정도의 지혜와 지식은 기본적으로 탑재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마흔이 된다고 저절로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마흔이 되면 각종 청구서가 날아온다.

가족, 사회 그리고 나 자신으로 부터 말이다.


마흔이 되면, 세상 강할 것 같던 부모님이 내 도움이 필요로 하게 된다.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 같던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이제 진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던 사람에서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마흔이 되면 가족으로 부터 받는 청구서이다.



마흔이 되면 세상이 각종 청구서를 요구한다.

여기서 청구서는 진짜 돈을 내라는 말이다.


마흔이 되어 겨우 내 집과 내 차가 생기니 나라님이 세금을 요구하신다.


1월에는 자동차세 연납, 동생생일

2월에는 설날, 시아버지 생신

3월에는 시어머니 생신,

한 달 쉬고 

5월에는 어버이날, 아빠 생신

6월에는 자동차 보험료

7월에는 재산세

8월에는 엄마생신

9월에는 추석과 재산세

...

통장 속 돈은 만날 똑같은데 돈 내라는 특별한 날은 정말 달력 가득 빼곡하다.


이와 중에  내 몸도 청구서를 내민다.

전에 지인들이 일본 여행을 가면 동전파스를 산다기에 "파스를 왜 사는거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진짜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마흔이 넘으면 하나 둘 아픈데가 생긴다.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생각도 못하던 다양한 곳들이 아프기 시작한다.


병원 갈 일이 많아지고 이 세상에 왜 수많은 약이 존재하는지 알게된다.

어디다 쓰는지 몰랐던 파스를 달고 살게 된다.


마흔이 되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아....엄마가 이래서 그랬구나.


마흔이 되면 과거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던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쯤 되면 마흔이 되면 정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나요?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마흔이 되면 좋은 점이 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가족보다 친구가 소중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마흔이 되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친구가 더 소중했던 십대, 

연인이 더 소중했던 이십대를 지나,

비로소 마흔이 되면 가족 다라는 진리를 알게 된다.


오십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마흔이 되면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

당연했던 부모님의 사랑을 곱씹게되고,

사랑하던 연인은 가족이 됐으며,

소중했던 친구들은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 욕심이 조금 사라진다.

누군가를 이기고 줄세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를 지나

몸이 조금씩 아파지는 마흔이 되면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은 은근히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성공했거나 아니거나

건강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건강은 우리 모두의 1순위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전에는 무엇이라도 남보다 잘하고 싶었다.

무언가 뛰어난 사람을 봤을 때 순수하게 칭찬하지 못하고 경쟁상대로 여겼던 것 같다.

이제 마흔이 넘어 더 이상 다른 이를 이기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에 모래알 같은 존재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한걸음 앞서 나가도 괜찮다.

우리 사이에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며 나보다 조금 나은 사람을 만난 건 축하해줄 일이지 경쟁할 일이 아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그걸 알았다.

다른 사람의 재능을 충분히 축하해줘도 된다는 것을...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며,

다른 이의 재능이 나의 순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마흔 청구서


그럼 앞으로 20년 더 살면 만족할 수 있겠니?

"아니요 부족합니다. 더 오래 살고 싶어요.

적어도 40년은 더 살아봐야 될 것 같아요."


낭랑 18세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마흔은 아기야...

이제 겨우 출발선일 뿐....

아직 갈 길이 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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