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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Sep 22. 2022

[짧은 산문] 이정표를 찍는 중입니다.

매주 주말이면 지나온 일주일을 정리해보는 '주간 일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그날 있었던 일들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다 보면 이번 한 주도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때로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주간 일기 작성을 위해 틈틈이 찍어놨던 사진들을 보면 며칠 전에 일어났던 일들도 방금 경험한 것처럼 금세 그날의 기억이 샘솟곤 합니다.


이전부터 주간 일기를 작성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주간 일기는 네이버 블로그 챌린지를 참여하고 있어 현재 쓰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루 또는 며칠 또는 일주일을 묶어 생각이 날 때마다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로 저만의 다이어리를 하나하나 작성해 모았습니다.

펜으로 쓰는 것보다 노트북의 깔끔한 키보드 누르는 소리를 ASMR삼아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다 보면 말이 좀 더 길어지고 생각들을 수월히 써 내려갈 수 있어 언제부터인가 네이버에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일기를 쓴 지 약 13년이 다 되어갑니다.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처음 쓰기 시작한 일기는 왜 그렇게 쓰기 싫었는지 지금은 무엇을 썼는지 그때 썼던 내 공책들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어 그것을 일기라고 부르기엔 너무 부끄럽고 염치가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일기라고 불러도 좋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 입대했을 때부터입니다.

지금처럼 휴대폰 사용도 불가능했고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런 군대를 갔다 왔습니다.

맨몸 말고는 주어진 것이 없었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저녁 쉬는 시간에 기본 물품으로 나누어준 작은 다이어리 위에 그날 받은 훈련들을 몇 자 끄적이며 정리한 것이 제 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엔 '훈련, 청소, 제식'과 같은 단어로만 그날 있었던 일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단어가 아닌 문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년 12개월 55주 365일 작은 칸들로 나누어진 하루하루를 문장을 채워 넣기엔 주어진 다이어리가 너무 작았습니다.

다이어리는 포켓 다이어리로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다이어리에 저의 일상들을 채워 넣으려니 마치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것처럼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다이어리를 따로 구매해서 일기를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8시 유일하게 자유시간으로 주어진 개인정비 시간은 제가 온전히 저를 위해 일기를 적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시작이 항상 같았습니다.

'일어나기 힘들었다. 더 자고 싶다. 날씨가 좋다.' 등등 잃어버린 초등학교 일기장처럼 식상한 도입부로 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시야가 넓어지면 꿈이 커진다고 했던가요. 일기를 쓸 수 있는 칸이 넓어지면서 제 일상의 폭도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추억하고 싶은 일, 시답지 않은 일 등등등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군대 안에서 저만의 다채로운 일상이 하나하나 다이어리에 적혀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일기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일기를 옆에 두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 또는 몇 주간은 한 글자도 적지 않을 때가 있었고, 뒤늦게 다이어리의 존재를 깨닫고 밀린 일기를 적거나 일별로 나누어진 작은 네모 칸에 간단히 단어만 적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해가 다가오면 매년 새 다이어리를 사는 의식은 잊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신년 목표가 매년 똑같은 다이어트이듯 저의 신년 목표도 매년 똑같이 일기 꼬박꼬박 쓰기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중간중간 치즈의 구멍처럼 잠시 빠진 과거의 일상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를 채워 줄 징검다리 같은 남아있는 일상들이 있어 10%도 채우지 못한 과거의 다이어리를 쳐다보면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다이어리에 손으로 일기를 작성하다 말했듯이 네이버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사할 때 가장 먼저 손으로 쓴 다이어리들을 챙기고 이사를 마치고 나면 지난 일생의 흔적이 묻어있는 그 다이어리를 펼쳐보곤 합니다.


죽을 만큼 힘들게만 느껴졌던 과거를 보며 이제는 웃음을 짓고, 행복하다고 적었던 글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들을 재생시켜봅니다.


하루하루 쓸 때는 이 일기가 어떤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수백, 수천의 글들의 흔적을 남겨 놓으니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면 또 다른 주간 일기를 작성하게 됩니다.


비록 개인 일상이 담긴 누추한 글들이지만 '주간 일기'를 작성하며 조금이나마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제 일상을 표현한 글들이 그들의 삶에 또 다른 크고 작은 이정표가 되어 서로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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