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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Feb 13. 2023

까지의 설날은 어제였고, 우리의 설날은 오늘이었다.

2023년 1월의 어느 날.


1.21(토)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으로 떡국을 먹고 씻고 큰집인 광양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문팔라에 익숙해질 겸 효도도 할 겸 나의 운전으로 머나먼 설날 귀경길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코로나 이후 변화된 명절 분위기 때문인지 고속도로엔 차들이 없이 한산했다.


아빠의 운전 코칭을 받으며 운전을 하는데 괜히 나도 운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젠 아들이 다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명절은 명절인지라 중간에 차가 잠시 막혔지만 그래도 4시간 만에 광양에 무사히 도착했다.


큰아빠와 큰엄마 그리고 사촌 형인 갑수형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새로 이사한 큰아빠네 아파트에 들어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엔 할머니가 명절만 되면 항상 단술(식혜)를 만들어주셨는데 그 단술을 먹는 게 명절의 행복 중 하나였었다.


그리고 이번에 큰엄마가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단술을 만들어본다며 추억의 명절 단술을 주셨는데 오랜만에 먹는 단술은 맛있었다.


큰엄마와 갑수형에게 청첩장을 나눠주고 고된 운전에 피곤했는지 거실에 누워 그냥 쉬었다.



점심으로는 맛있는 소불고기 한상을 차려주셨고 한상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산소에 갔다 왔다.


원래 선산이 있었고 먼저 쉬고 있던 할아버지 옆자리에 할머니가 가기로 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른 친척들과의 문제 때문에(매우 복잡함)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다 광양의 공원묘지로 이장하게 되었다.


산소에 도착하여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리고 술을 뿌리며 속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 결혼해요.'


할머니가 아프셔서 요양병원에 계실 때 찾아뵈면서 할머니 손을 꽉 잡아드렸을 때 할머니가 내 결혼식에 온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하늘나라에서 결혼식을 보시게 되었다.


괜스레 가슴이 찡해진다.



산소에 갔다가 다시 큰집에 들어가니 한창 튀김을 만들고 있었고 나는 고구마튀김 몇 점을 주워 먹고 낮잠을 청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 새우튀김과 오징어튀김을 먹고 조금 쉬다가 사촌누나인 정임이 누나네가 와서 인사를 하고 꽃게탕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잠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산청의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길을 여차여차해서 가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산청의 한 시골길로 들어섰고 다시 그 꼬불꼬불한 길을 열심히 달려 산골 자기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항상 변함없는 외할머니 집이 나타났다.


엄마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다고 하는데 차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이 길을 어릴 적부터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새삼 엄청난 시골이라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 때문에 명절에 포항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거의 3년 만에 외할머니를 만났다.


몇 년 만에 이전보다 더 늙은 모습에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가슴이 찌릿해진다.


엄마도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한참을 앉아 말을 걸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으니 정말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설날에 포항에 가기 전에 엄마가 전화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이번엔 광양하고 외할머니 댁 가?"


"가야지. 외할머니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엄마, 그래도 엄마의 엄마인데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면 우야노. 건강하게 더 오래 살아야지."


"틀린말은 아니지,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음께."



말은 이렇게 퉁명스럽게 했어도 엄마는 외할머니를 보자마자 만감이 교차하는지 외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큰 외삼촌, 큰 외숙모, 작은 외삼촌, 작은 외숙모, 사촌 형 그리고 결혼한 사촌동생을 오랜만에 보며 인사를 나누었고, 한동안 너무 교류가 없었던 탓인지 살짝 어색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지 않았는지 잠시 내 과거의 행동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12시에 외할아버지 제사를 함께 지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제사 때만 되면 외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음력 1.1인 설날에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한다.


명절에 모인 겸 제사를 함께 지내라는 외할아버지의 자식 생각이라고 우스개스럽게 이야기한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5살쯤에 돌아가셨고 내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발인 날에 나는 논두렁에 앉아있고 그 옆으로 상여행렬이 지나가고 있던 화창한 겨울 어느 날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고 외할머니와 엄마와 오손도손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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