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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Dec 08. 2023

낮에 홀로 존재감을 비추는 낮달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10월 2일 월요일


'대체 공휴일 만세!'라고 외치고 싶은 날이다.


대체 공휴일이 아니었어도 연차를 사용해 쉴 생각은 했지만 마침 대체 공휴일이 생겨 연차를 하루 아낄 수 있는 날이다.


물론 긴 연휴가 끝나면 회사에 복귀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 발등에 불이 활활 타오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장점이라고 하면 ON / OFF가 매우 잘 된다는 것이다.


퇴근과 동시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게 스위치를 끈다.


어차피 스트레스 받고 걱정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바뀌는 일이 없으니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고통받기 보다 지금을 더 충실히 사는 것이 나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거기에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운동을 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몸은 한결 가벼워졌음에 만족한다.


작은 것에 또 한 번 만족해 본다.




아직 해가 높게 떠 있는 시간에 며칠 전 코스트코에서 산 '글렌리벳 12년산(GLENLIVET)'을 개봉했다.


거의 2년간 위스키를 즐기고 있는 우리는 부드러운 스카치 위스키가 우리 입맛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랜피딕도 먹어봤지만 글랜리벳이 더 부드럽고 과일향을 많이 머금고 있어 글랜리벳을 더 좋아한다.


글랜모렌지도 맛있다고 하는데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사서 먹어봐야겠다.



치킨과 함께 위스키를 먹고 지현이가 후식으로 먹을 키위를 직접 깎아주었다.


칼을 든 지현이의 손이 언제 또 다칠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제법 키위를 잘 깎는 모습을 보고 지현이가 잘 하는 것을 또 한 번 찾게 되는 날이었다.


과일은 항상 내가 깎았는데 지현이가 깎아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요즘 '몬스터 헌터 나우'에 푹 빠져있다.

내 최애 게임인 몬스터 헌터(A.K.A 몬헌)가 포켓몬 고 처럼 증강현실 기반 AR 게임으로 출시되었고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이동할 때마다 폰을 켜서 몬스터를 잡고 소재를 채취한다.


몬스터 헌터를 만났을 때가 2009년 여름이었는데 벌써 14년 동안 그 시리즈를 즐기고 있다.


얼른 플스로 새 시리즈가 나오길 간절히 희망한다.


#글렌리벳 #키위 #몬스터헌터나우





10월 3일 화요일



아침 테니스를 치러 갔다.


무료 테니스 코트라 선착순으로 운영되었고 예전에 눈앞에서 자리를 뺏긴 적이 있기에 그런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6시 반에 일어나 7시에 치러 갔다.


몸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제 좀 랠리가 되고 있었다.


갑자기 나이 많은 아저씨와 할머니 같은 아줌마가 오더니 우리가 치던 코트에 난입했다.


그러더니 코트를 나눠 치자고 우기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고 '우리가 먼저 와서 치고 있으니 같이 못 친다.', '선착순으로 코트 사용하는데 우리 치고 치시라.' 이야기했지만 아저씨와 아줌마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역정을 냈고 소리를 질렀다.


'저희가 먼저 와서 치고 있는데 자리를 뺐으시면 안되죠.'


'언제부터! 언제부터 코트를 사용했는데! 우리는 예전부터 이 코트를 사용했어!'


정말 말이 1도 통하지 않았다.


약 10분간 대화가 이어졌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더 싸우려고 했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기에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속에선 화가 끓어올랐지만 참을 인(忍)을 몇 번이고 적었다.


반씩 코트를 사용해서 치는데 너무 화가 나고 이미 기분은 상해버려서 더 이상 테니스를 치고 싶지 않아 그냥 나와버렸다.


나이만 들었다고 다 어른이 아닌가 보다.


나이를 어디로 잡수셨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수영을 하러 갔다.


테니스로 쌓인 화(火)와 열(熱)을 물로 식혔다.


분노의 수영으로 한 시간 동안 2,550m를 돌며 마음의 안정(inner peace)를 찾았다.



저녁에 고기와 함께 먹기 위해 어머님이 심어놓은 깻잎을 따러 갔다.


포항 우리 집 마당에 깻잎을 따서 고기를 먹었던 포항 삶들이 생각났다.


역시 깻잎은 직접 키운 깻잎이 최고다.




직접 만든 그릭요거트에 골드 키위를 더하니 맛과 맛이 더해 미미(美味)가 되었다.




어느새 하루가 점점 짧아지는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세상에 빛이 사라져 실루엣만 보이는 단색의 날이 되었다.


가을이 되니 감성이 피어난다.


역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10월의 책으로 읽을 책들이다.


(아직 1권도 다 읽지 못했다.)


지현이가 회사에서 상품권 10만 원을 받았고 그 상품권으로 서로 읽을 책을 샀다.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나서 다시 하루키 세계에 심취해버렸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 읽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또 읽고 구민이가 어렵지만 좋은 책이라고 추천한 '소비의 사회'를 읽어봐야겠다.


#테니스텃세 #나이를먹는다는것 #분노의수영 #그릭요거트 #키위 #깻잎 #10월의책




10월 4일 수요일





가민 어플이 업데이트되고 운동에 대한 코멘트를 적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코멘트는 '2주 만에 강습으로 등이 박살 나는 중'이다.


2,000 밖에 하지 않았는데 등에 근육이 펌핑 되면서 근피로도가 난리가 났다.


고작 2천에 무릎 꿇게 된 내 수영 모습을 보며 개탄을 금치 못했다.





수영이 끝나고 출근하는 길 보이는 낮달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을 느낀다.


밤에 떠있는 밤달보다 낮에 홀로 희미한 존재감을 비추는 낮달이 내 마음을 더 간지럽힌다.


태양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 같아 그 처량함을 나라도 낮달을 달래주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추석에 챙겨주려고 했지만 내가 한사코 가져가지 않겠다고 옥신각신했지만 결국 챙겨오게 된 국수를 삶아 어머님이 주신 열무김치를 더해 열무국수를 만들었다.


양가 어머님의 환상적인 콜라보였다.


#수영강습 #낮달 #열무국수






10월 5일 목요일




드디어 두 달 만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다 읽었다.


한동안 책을 안 읽기도 했고, 그 사이 다른 책들을 많이 읽기도 했었지만 두 달이나 걸리다니 한 책으로 그 기나긴 세월을 보낸 나를 살짝 반성해 보기도 한다.


인상 깊은 글들을 포스트잇 플래그로 표시해두는데 책이 1,000 페이지나 되었고 그 속에 신기하며 인상 깊은 상황이 많아 이번 책은 특히 플래그가 많이 붙어있다.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오펜하이머'의 삶을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알게 되면서 인생의 기구함과 사회의 악랄함과 인간의 선함과 악함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책 표지는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맡을 당시 찍었던 사진이고, 마지막 장에 나온 오펜하이머 사진은 청문회와 온갖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모든 세계를 떠나 드디어 홀가분하게 자신만의 인생을 살게 된 노년의 오펜하이머 사진이다.


한창 자신감에 차있고 젊었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의 모습과 다르게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맞아버린 노년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 속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슬픔을 볼 수 있었다.




지현이 사촌 동생인 주진영의 신혼집에서 열린 집들이에 참석했다.


집들이 선물로 신세계에서 접시 세트를 주었는데 좋아할지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선물을 받고는 매우 좋아해 주었다.


족발, 보쌈, 탕수육, 칠리새우, 양장피 등등 온갖 화려한 음식으로 수놓은 식탁에 음식의 무지개가 활짝 피었다.


와인과 하이볼을 마시며 온 사촌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자리가 펼쳐졌다.


밤은 깊어갔고 우리는 무르익어갔다.


#아메리칸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 #집들이선물






10월 6일 금요일




두 시간을 치고 싶지만 한 시간 밖에 테니스를 치지 못하는 슬픈 아쉬움을 뒤로하고 점심을 먹으로 스타벅스로 향했다.


덥고 배고파서 자몽 어쩌고 하는 메뉴를 시켰는데 결국 다 먹지 못했다.


베이글도 다 먹지 못해 남기는 모습을 보고 지현이는 괜히 두 개를 시켰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남은 베이글은 오후 3시에 간식으로 다 먹었다.


벌써부터 주말이 된 기분이다.




TV에 부대찌개가 나왔고 급 부대찌개가 끌려 집 앞 담꾹에서 부대찌개를 포장해왔다.


담꾹 부대찌개 내용물 중에 육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을 지를 때 쌀뜨물을 남겨 둘걸 그랬다.


쌀뜨물로 끓이면 더 맛이 깊어질 텐데.


#테니스인생 #부대찌개





10월 7일 토요일




화요일 테니스장에서 어른 같지 않은 어른 때문에 똥 밟았던 똥날 이후 학하동 테니스 코트에 가지 싫어 돈을 내고서라도 테니스를 편하게 치기 위해 충대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클레이 코트(흙 코트)라 살짝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충대 테니스장은 넓고 괜찮았다.


구민이랑 테니스 전지훈련에서 클레이 코트를 경험해 본 터라 아주 이상하진 않았다.


다음부턴 충대로 가야겠다.



우리의 아지트인 숨인 카페에 가는 길 귀엽게 앉아 있는 카오스 고양이를 발견했다.


'야생의 고양이가 나타났다!'


순간 간택당하고 싶었다.




지현이가 해맑은 내 모습을 남겨주었다.





 요즘 푹 빠져 읽고 있는 책인 '도둑맞은 집중력'이다.


지현이가 읽고 너무 좋다며 얼른 나보고 읽어보라고 했고 오랜 숙제였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다 읽고 올해 19번째 책으로 이 책이 선정되었다.


가장 큰 요점은 인스타그램, 쇼츠 등 짧은 쾌락이 주는 것에 빠져있지 말고 미디어를 멀리하여 독서와 운동 같은 긴 활동이 주는 도파민을 활성화시켜 우리의 집중력을 되찾자는 것이다.


'도파미네이션'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 중첩되기도 한다.


그래서 짧은 쾌락이 주는 도파민을 최소화하고자 휴대폰을 더 적게 보려고 노력 중이다.


인스타그램 알람을 껐고 가끔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들어갈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고 인스타그램을 빨리 종료한다.


글을 쓰는 것도 긴 활동이 주는 도파민 분비이다.


일기를 에세이처럼 써야 하는데 밀린 일기가 많아 쉽게 되지 않는다.


아직 더 남겨야 할 나의 날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그 중간을 뛰어넘기엔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이 펼쳐졌다.


무려 한일전이었고 금메달과 병역면제보다 일본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달린 경기이기도 하다.


한국을 응원하는 한국인의 맛 '신라면'과 함께 아이러니하게 일본 술인 아사히 생맥주을 마시며 우리나라를 응원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일본을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반 6분 만에 골을 먹혔지만 기가 막히게 역전을 한 보기 드물게 재미있는 경기였다.


#테니스 #고양이 #숨인카페 #도둑맞은집중력 #도파민디톡스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결승





10월 8일 일요일




아침 1시간 16분의 테니스와 35분의 수영을 한 운동인의 삶을 살았다.


테니스와 수영을 함께해 주는 지현이가 있어서 너무 좋다.




선영이가 김치찜과 당면 콩나물을 만들어줘서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잠시 눈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다시 웃음이 찾아온 식탁이었다.




직장인의 희망은 로또와 복권인데 로또는 역시나 안됐고 재미 삼아 산 스피또에서 4천 원이 당첨되었다.


이제 20억만 당첨될 일만 남았다.


20억 당첨되면 설렁설렁 일하면서 편하게 살아야지.


당첨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복권이 당첨된 것처럼 행복하다.


파이어족이 되어야지.


#테니스 #수영 #운동부부의삶 #복권 #스피또 #직장인의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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