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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Feb 02. 2024

소를 잃어보고 나서야 소가 귀한 줄 알게 되었다.

1.12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창 너머에서 햇살이 들어와 눈을 노크했다.


똑똑똑.


아직 정신이 몽롱한 채 손을 뻗어 침대 테이블 위에 놓인 안경을 찾으려고 손을 더듬거렸다.


'아, 나 라식 했지.'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벽면에 놓인 우리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꽤 선명하게 보이는 우리 사진을 보고 내가 라식을 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져서 마치 안경을 쓰고 있는 중인 것만 같았다.



병원에 도착했고 담당 의사를 만나 눈 상태를 확인받았다.


스마일 라식 수술을 하면서 내가 초록 불빛을 제대로 봤는지 나도 확신하지 못했기에 진료를 받으며 의사에게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선뜻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시력이 1.0으로 잘 나왔고 3주 후에 다시 병원에 오라며 아무 말이 없었기에 혼자 속으로 수술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병원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다들 나처럼 라식 수술을 하고 온 손님들인가 보다.



마지막 원두를 넣어 커피를 내렸다.


살짝 데운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올려 먹었다.


혀에 감기는 달콤함과 밀가루의 감칠맛이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내가 라식을 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고 있다.


가끔 안경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손을 콧잔등 위로 가져다 올린다.


허공을 가르는 손이 민망해 나도 모르게 손으로 코를 긁어본다.


시야가 완전히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수술이 잘되지 않았으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불안감이 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눈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이다.




우리도 심심해했고 연주도 심심해해서 심심한 사람들끼리 모여 집 앞 투썸으로 향했다.


씻지도 못한 머리를 모자로 가린 채 선글라스를 끼고 연예인인 듯 거리를 걸어갔다.


하루 잠시 외출하지 못했다고 잠깐의 외출이 이보다 반가울 수 없었다.


집에 있어도 휴대폰을 하지 못하고 티비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엔 어떻게 지냈는지 가물가물하다.


아, 그땐 게임을 했구나.


눈이 침침해서 요리를 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하는 배달의민족 어플에 들어갔다.


찜닭을 주문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달 음식은 먹을만한 게 없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안약을 넣고, 10분에 한 번씩 인공 눈물을 넣는 바쁨이 계속되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테니스와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소를 잃어보고 나서야 소가 귀한 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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