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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Feb 01. 2024

오늘은 새 눈을 갖는 날이다.

1.11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오늘은 새 눈을 갖는 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안경을 맞춘 이후로 15년 동안 안경을 쓰고 생활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눈은 나빠졌고 안경은 두꺼워져만 갔다.


-7.0, -6.0 디옵터의 도수를 가진 안경을 쓰면 시야의 왜곡으로 안 그래도 작은 눈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그리고 한 번 안경을 맞추면 20~30만 원은 훌쩍 넘는 비싼 가격에 1~2년마다 새 안경을 맞추기 부담스럽기도 하다.


수영할 때도 도수 수경을 껴야 해서 수경 선택을 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지현이가 작년부터 계속 라식 수술을 권유했지만 비싼 가격에 쉽게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작년 말에 함께 새해 목표와 자금 계획을 세우다 지현이가 한 번 더 이야기했다.



"오빠. 라식 수술하는 게 어때?"


"아냐 너무 비싸."


"평생 안경 맞추는 가격보다 라식 수술 한 번 가격이 더 쌀 수도 있어."



계산해 보니 그랬다.


그렇게 나는 지현이에게 설득 당했고 두근두근한 라식 수술을 결정했다.


안경을 벗는다는 게 매우 어색했지만 수영할 때 마음에 드는 수경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짝 설레게 만들었다.



대전 둔산동 '밝은누리안과'에서 지난주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 라식 수술날이 찾아왔다.


사실 아침부터 너무 가슴이 뛰었다.


설레서이기 보다 수술이라는 큰 부담감에 심장은 드럼 소리를 내며 쿵쾅쿵쾅 마구 뛰었다.


다른 수술도 아니고 눈 수술이라 그런지 더욱 떨렸다.


연주가 수술받았던 이재현 선생님에게 수술을 받기로 하고 수술 팔찌를 찬 후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스마일 라식은 레이저로 각막을 깎는 수술이며 수술이 잘 되고 회복이 매우 빠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수술 과정은 레이저 녹색 불빛을 15초 동안 계속 바라봐야 하는데 수술 설명할 때 초록 불빛 말고 다른 곳을 보면 안 된다는 말을 계속 들어서 내가 과연 초록 불빛을 15초 동안 잘 볼 수 있을지 너무 걱정되었다.


남몰래 혼자 한 불빛을 계속 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수술실로 들어갔고 마취 안약을 넣고 내 순서가 되길 기다렸다.


수술 방 안에는 라식 기계가 3개 놓여 있었고 나는 간호사 손이 이끄는 대로 한 기기 앞으로 이동해 편안하게 누웠다.


수술 대기할 때보다 심장은 더 크고 빠르게 뛰었다.


이내 의사 선생님이 도착했고 다시 한번 마취 안약을 넣은 후 눈을 감지 못하도록 보조 기구를 눈에 끼워 넣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귀에서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젠 돌이킬 수 없기에 매우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레이저 기계가 눈앞으로 내려왔고 뒤이어 초록 불빛이 보였다.


나는 있는 힘껏 초록 불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참고 참으며 불빛을 바라봤다.


설명 들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변하며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레이저 시술이 끝났다는 말이 들렸고 후반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눈이 나빠 각막을 많이 깎아내야 해서 각막 강화술을 추가로 시술받기로 해서 수술 시간은 조금 더 오래 걸렸다.


눈을 뜬 채로 여러 수술 기구들이 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며 눈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 보이고 느껴졌다.


그리고 시야가 노랗게 변했다.


순간 나는 두려웠다.


'만약 수술이 잘못되어 내 시야가 이렇게 노랗게 보이면 어쩌지?'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인 듯 이내 다시 시야가 원상 복귀되었고 왼쪽 눈 이후 오른쪽 눈 수술까지 무사히 끝나게 되었다.


30분 정도 수술을 받았던 것 같다.


아직 수술 직후라 모든 시야가 뿌옇게 보였고 안경을 끼지 않았지만 먼 거리까지 막힘없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안이 얼떨떨한 채로 우리를 데리러 온 어머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스마일 라식 수술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에 윌라를 설치해 오디오북을 다운받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책을 재생했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수술이 잘 되었는지 혼자 걱정을 하면서 한 귀로는 오디오북을 감상했다.


의외로 오디오북은 들을만했다.


나는 베개를 베고 눈을 감으면 10초 만에 잠이 든다.


그리고 어김없이 오디오북을 듣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책 내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분명 주인공이 파리 센강에서 노숙자를 죽였는데 그게 왜 죽였는지 어떻게 그 노숙자랑 만나게 됐는지 자느라 아무것도 모르겠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나를 위해 지현이가 무려 저녁을 차려주었다.


직접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밀키트 부대찌개!


충격적인 건 부대찌개 밀키트에 소시지가 들어있지 않았다.


불량 당첨이다.


지현이와 나는 황당했지만 다행히 집에 스팸과 베이컨이 있어서 그냥 그걸 넣어 먹기로 했다.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스팸을 썰어 넣었다.


그렇게 지현이가 만들어준 부대찌개가 탄생했다.


맛있게 저녁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또다시 심봉사가 되었다.


라식 수술을 하고 눈이 안 보일 때 지현이에게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냐?!' <왕의 남자> 드립을 하려고 했는데 지현이가 <왕의 남자>를 안 봤다고 한다.


매우 아쉽다.


심봉사 흉내나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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