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전국이 열광하던 그날.
2002년 6월.
우리나라는 빨간색에 열광했다.
나는 똑똑히 기억하지만 나보다 좀 더 어린 사람들은 잘 기억 못 하는 그날이 있다.
바로 기적의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는 코를 흘리던 디아블로 2에 열광했고 PC방에 출석 체크하던 중학교 2학년이었다.
월드컵엔 단골로 진출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승리가 단 1승도 없는 우리나라가 큰 성과를 내리라곤 그땐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가족들과 TV 앞에 나란히 앉았다.
전반 26분 황선홍의 그림 같은 골이 들어가자 우리 가족을 포함해 온 동네가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그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번엔 뭔가 일을 낼 것만 같은 기대감을 품었다.
그리고 후반 8분 유상철의 골로 2대 0이 되었고 몇 차례 공수전환이 있은 후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그날 밤부터 TV, 신문, 인터넷을 포함한 온갖 매체에서는 월드컵 이야기만 나왔고
나도 친구들을 만날 때면 월드컵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폴란드전에 거리응원에 갔다 왔다던 친구의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듣고는 나도 거리응원을 가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월드컵을 개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 앞 오광장에서 차들을 막아놓고 거리응원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Be the Reds'가 쓰인 붉은 응원 티셔츠를 입고 싶었지만 우리 집엔 없었다.
그래서 다른 붉은 티셔츠를 찾아봤지만 그것도 없었다.
살짝 아쉬웠지만 직접 거리응원을 간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다.
거리응원이 펼쳐지는 오광장엔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한쪽엔 대형 스크린이 있었고 다들 붉은 옷을 입고 앉아서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아빠의 손을 잡고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바닥에 앉았다.
"붉은 악마 옷 안 입어도 괜찮나? 아빠가 하나 사줄까?"
아빠가 걱정이 되는지 나에게 물었다.
"아냐 괜찮아. 어차피 한번밖에 안 입을 건데 없어도 돼."
나는 쿨하게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나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싶었다.
내 주위를 둘러싼 붉은 물결 속에서 함께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속으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고 거리응원을 나온 사람들이 목청껏 우리나라를 응원했다.
전반 45분 내내 골이 터지지 않았고 이러다 지는 건 아닌지 초조했다.
그럴수록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우리나라의 승리를 기원했다.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도시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1대 0으로 대한민국이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승리를 차지했다.
그래 나만 빨간색이 없으면 어때, 우리나라가 이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