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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Mar 05. 2024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1.28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충대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30분 더 일찍 나왔으면 아침 시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여전히 새해가 되어서도 아침잠에 굴복해버리는 나다.



항상 머릿속은 페더러지만 현실은 허우적거리는 허수아비인 내 모습에 테니스 영상을 찍고 나서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건 왜일까.


라켓을 끝까지 던지지 않고 스탠스가 좁은 것이 이젠 보인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서는 상체는 백조처럼 하체는 오리처럼 발을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는 어느 한 유명한 테니스 레전드의 말이 생각난다.


조금 더 스탠스를 넓히고 잔발로 타이밍을 잰 후 테이크백과 스윙 그리고 피니시에 더욱 신경 써보자.


이렇게 쓰고 나니 그냥 모든 것을 다 고쳐야 하는 지경 같다.


사실 이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더 연습하자.


연습만이 살길이다.




햇살이 달콤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느 주말 오후와 마찬가지로 카페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제2의 아지트인 '노이브로트 카페'가 문을 닫아버렸다.


오늘 같은 달콤한 날 딱 노이브로트 감성이었는데 정기 휴무일인 줄 모르고 와버렸다.


그래서 플랜 B를 가동해 공주 '봉곡리 커피'에 갔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봉곡리 커피는 전원주택 단지 안에 위치해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여유의 향기가 묻어 나오는 곳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 지현이와 소소하게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글밥 김선영> 속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문구다.


필사를 하고 싶어 산 이 책은 필사를 넘어 어떻게 글을 대해야 하는지 예시와 함께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녹여 우리에게 잘 이야기해 주고 있는 책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큰 선물을 내게 안겨준 것 같아 감사한 책이기도 하다.


잠시 글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글과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이어령>



말만 들어봤던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볼 수 있었다.


첫 문장에서 바로 공감이 갔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인데 그걸 에고이스트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이유를 단 한 단어인 '에고이스트'로 설명한 혜안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역시 사람은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한다.



"중요한 것은 자학이 아닌 능청스러움이다. 고해성사하는 죄인처럼 써서는 안 된다. "사실 나는 과거에 이러저러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정색하듯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 한심한 인간이 거울 속에서 헤헤 웃고 있다."



어순을 조금 바꾸고 능청스러움을 한 스푼 추가하니 더 멋진 글이 탄생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나의 글밥은 거지 뒷동냥 수준인 것 같아 부끄러웠다.


42.195km를 달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마라톤이라면 글을 쓴다는 것은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인 것 같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한 남자가 한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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