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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Mar 13. 2024

우리 둘은 마치 페더러와 조코비치였다.

2.3


2024년 2월 3일 토요일




주말이지만 일찍 울리는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곤히 자고 있는 지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침대에서 조심히 다리를 움직여 일어나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와 시계를 쳐다보고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어제저녁에 미리 싸둔 짐을 마저 챙겼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리더니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지현이가 일어났다.


"오빠 준비 다 했어?"


나는 어느 때보다 말똥말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지현이 잘 잤어?"


버스에서 먹을 빵과 두유를 마저 챙기고 추울까 봐 패딩을 걸친 지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어머님이 딱 맞춰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침 문안 인사와 함께 태워다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차에 올라탔다.


대부분 휴식을 취하고 있을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도로엔 차들이 없이 한적했고 일찍 나온 덕분에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학하동에 살아서 어머님이 아침부터 사위 약속 때문에 굳이 차를 몰아 유성 터미널까지 태워주셨다.


지현이와 어머님께 감사의 인사와 잘 갔다 오겠다고 말하며 터미널로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물을 한 통 사고 예매해둔 버스 표를 끊고 이미 도착해있는 충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텅 빈 버스 안에 예약한 자리에 앉아 소시지 빵을 꺼내 먹으며 허기진 아침 배를 채웠다.


이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충주로 가는 1시간 40분 동안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국도를 달리고 있었고 건물이 듬성듬성 보이더니 이내 충주 시내로 들어섰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구민이를 기다리며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해 로또 두 장을 샀다.


약 실수령 15억의 로또 1등이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행복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곧 구민이가 차를 끌고 도착했고 간단한 간식과 장을 본 후 우리는 충주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충주에서 6시간 동안 테니스 전지훈련을 하는 날이다.


제1회 김천 1박 2일 테니스 캠핑 전지훈련에 이은 제2회 충주 테니스 전지훈련의 시작이다.



충주는 매우 좋은 테니스장을 가지고 있었다.


탄금대에 위치한 테니스장은 실내코트 3면에 야외 코트 12면을 가졌으며 시설이 좋고 충주에 사람이 없어 언제나 테니스를 예약하고 널찍하게 즐길 수 있는 매우 좋은 장소이다.


우리는 실내코트 6시간을 예약했고 정말 오늘 하루 뼈가 부서지도록 테니스만 칠 계획을 가지고 탄금테니스장에 도착했다.


테니스 가방과 간식 짐을 내려두고 먼저 몸에 무리가 가지 않기 위해 팔꿈치부터 시작해 어깨 그리고 무릎 테이핑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절 하나하나가 예전 같지 않아 이렇게 보호를 해주는 테이핑은 격한 운동 전에 필수이다.


각자 주머니에 공을 3개씩 넣고 서로의 코트로 넘어가 몸을 풀기 위해 간단한 랠리를 시작했다.


파란색 코트 위로 옵틱 옐로우(optic yellow) 색의 테니스 공이 네트를 넘어왔다 갔다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작년 8월에 있었던 제1회 김천 전지훈련 이후 눈에 띄게 향상된 서로의 실력에 우리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리 둘은 마치 페더러와 조코비치였다.


하지만 테니스를 치는 우리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웬 허수아비 두 개가 허우적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벗어나는 공 없이 열 번 이상 왔다 갔다 랠리가 계속되었다.


심박수는 점차 상승했지만 도파민도 동시에 상승했다.


테니스 공이 라켓에 맞아 울리는 팡! 소리는 그동안 쌓인 모든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주는듯했다.


역시 테니스는 재미있다.



두 시간 테니스를 치고 나니까 슬슬 힘듦과 허기짐이 함께 찾아오기 시작했다.


땀을 많이 흘린 다음이라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은 없었으나 월초에 여행 와서 먹었던 막국수와 통닭이 생각나 그 집에 가기로 했다.


차 타고 3분 거리에 이전에 방문했던 '본가중앙탑막국수'가 있었고 우리는 막국수 곱빼기 한 그릇과 치킨 한 마리를 주문했다.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구민이는 연애와 결혼 준비의 힘듦과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구민이 말에 때로는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적인 연애와 결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주며 다독여주었다.


막국수와 통닭은 맛있었고 이때를 떠올리니까 갑자기 막국수와 통닭이 먹고 싶어졌다.



든든하게 체력을 보충한 우리는 다시 테니스장으로 돌아왔다.


옆 코트에선 고인물로 보이는 동호회 사람들이 엄청난 실력으로 경기를 하고 있었다.


체육관엔 테니스 공과 라켓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기합소리들 밖에 들리지 않았다.


식은 몸을 다시 예열하기 위해 다시 공을 네트 위로 넘기며 간단한 랠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전지훈련의 목적인 서브와 발리 연습에 들어갔다.


각자 코트에서 공 3개씩 서브로 넘기고 받기를 반복했다.


아직 테니스를 배운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테니스가 너무 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동호회를 들까 고민해 봤지만 스트로크는 어느 정도 되지만 아직 서브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전지훈련에서 꼭 서브 메커니즘을 연습해 숙달하려고 했다.


처음엔 너무나 어색했다.


일명 프라이팬 서브가 나오기도 했고 공이 네트에 걸려 넘어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서비스 라인 안으로 들어가는 공들이 생기면서 내 몸이 얼추 감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 실력을 늘리는데 전지훈련만 한 것이 없다.


어느덧 전지훈련을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났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공에 대처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 반 박자씩 늦게 반응했다.



기계처럼 우리는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렇게 테니스를 친지 5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도저히 이 상태로는 연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이만 제2회 전지훈련을 마치기로 합의했다.


코트 예약 시간이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예전 같지 않게 늙어버린 우리의 몸 상태를 배려해 짐을 챙겨 테니스장을 빠져나왔다.


입고 있던 반팔 티는 땀에 흠뻑 젖어 절어있었다.


흘린 땀의 가치가 뿌듯해 힘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버스를 타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기 전 맥도날들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오늘 훈련의 뿌듯함과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민이의 최대 관심사는 곧 하게 될 결혼이었고 나의 관심사는 구민이의 성공적인 결혼이었다.


결혼을 한 유부남의 입장으로서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주었다.


결혼을 해보니 그 좋음이 얼마나 좋은지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기에 결혼을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집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지현이를 얼른 보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버스가 도착했고 그제야 눈을 떴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지현이가 나를 부르며 마중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좋은 행복인가.



지현이를 만나 결혼한 것은 내 인생 중 가장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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