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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Jul 03. 2024

여행의 즐거움을 다시 깨달았다.

2.17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가만히 있으면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을 나는 참 공감한다. 


어릴 적부터 시간이 있으면 밖으로 나가거나 무엇이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요즘 MBTI로 말하면 E이다.


가만히 있고 싶다가도 막상 밖으로 나가게 되면 얻고 느끼는 것이 많아진다.


그래서 체력이 부족하지 않는 한 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하나도 없다.


오늘은 새벽부터 밖으로 나간다.


떠나자 군산으로.



한국사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이제 함께 한국사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을 갖춘 연주를 태우고 짬뽕으로 유명한 군산에서 트렌드에 따르기 위해 중국집으로 향했다.


마치 부산 할머니 집이었던 만덕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골 동네에 위치한 골목을 지났다.


길냥이 한 마리가 골목 어귀에 있었고 그 모습을 놓칠세라 얼른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완벽한 고양이와 시골 풍경이 탄생했다.


이런 느낌 있는 사진을 찍고 나면 나도 모르게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사진 찍기는 취미 부자인 내 또 다른 취미 중 하나이다.



'진성원' 중국집에 들어가는데 테이블에 사람이 별로 없어 맛집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내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고 어느새 웨이팅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생활의 달인에 나왔다고 하는 '진성원'에서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하다 나와 지현이가 좋아하는 간짜장이랑 탕수육을 메뉴에 넣고 연주 픽인 짬뽕을 넣어 세 개만 주문했다.


사람은 세 명이지만 식사 세 개와 탕수육을 시키면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참았다.


중국집에서 식사류보다 튀김류를 먼저 먹어야 한다는 말에 따라 탕수육이 먼저 나왔다.


이집 탕수육은 정말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미쳤다고 생각 들었다.


정말 탕수육을 먹기 위해 군산에 놀러와 진성원을 찾아도 될 정도의 맛이었다.


우리 모두 탕수육에 홀린 듯 저작운동을 했고 이어서 나온 간짜장과 짬뽕의 맛도 기가 막혔다.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맛들의 향연에 우리는 군산에서 행복의 나라를 여행했다.


맛있는 식당을 찾는 일은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일이다.


조만간 탕수육이 생각나서 또 군산에 올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볼 수 있는 백종원이 촬영한 '짜장면 랩소디'에서 군산이 짬뽕으로 왜 유명한지 나온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은 우리나라에 있는 쌀을 엄청나게 수탈했다.


그렇게 수탈한 쌀은 당시 부산 다음으로 큰 무역항이었던 군산에서 일본으로 이송되었다.


수탈의 양은 점차 커져갔고 수탈품들을 운반할 일꾼들이 부족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만으로 일손이 부족하자 일본은 중국에서 일꾼들을 강제징집해온다.


그렇게 군산으로 온 중국인들이 무려 1,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원래 인간은 같은 나라 사람들이 많이 뭉치기 시작하면 그리운 자기들 나라 문화를 타지에 정착시킨다.


미국의 한인 타운과 차이나타운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군산으로 오게 된 중국인들은 군산에 중식당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일본이 패망을 했고 우리나라는 독립을 했다.


군산에 있는 중국인들 일부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남아 화교가 되었고 군산은 중국 음식이 유명하게 되었다.



짜장면이 중국 음식 자작면에서 발전한 음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짬뽕은 왜 짬뽕인 것인가?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중식당에 해산물과 여러 야채가 들어간 면 국물 요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짬뽕처럼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짬뽕 같은 모습이었다.


그 음식을 본 일본인들은 자기들 나라의 잠봉(여러 구성을 섞었다는 뜻)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잠봉이라고 불렀고 일본어 잠봉이 짬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의 짬뽕 모습은 1970년대 고춧가루가 대량 공급되면서 그 형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정말이지 신기한 음식 역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군산이 그런 이유로 중식당이 많고 짬뽕이 유명하다고 한다.


짬뽕에 대해선 더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그 이야기는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먹어보겠다.



군산에 온 김에 이성당 근처 번화가에 놀러 가기로 했다.


주차를 하고 골목골목을 걸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소품샵에서 토토로가 보였고 역시 내 친구인 토토로는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지현이에게 허락을 받고 하나 샀다.


그리고 적산가옥(1945년 독립 후 우리나라에 귀속된 일본인 소유 주택, 적의 재산이었던 집이라는 뜻) 구경을 하러 갔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큰 항구였으며 일제의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군산에서 또 하나의 사진을 건졌다.


역시나 고양이였고 또 고양이였다.


친구인 듯 친구가 아닌 듯 서로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햇볕 아래 아늑하게 쉬고 있었다.


인생네컷을 찍으며 그날의 군산을 기록하기로 했다.


지현이와 언제 한 번 찍자고 찍자고 그렇게 이야기했던 사진을 군산에 와서 이제서야 찍어본다.


흑백의 필름이 괜히 느낌 있어 보인다.



이성당에서 빵을 사고 들린 카페에서 매우 탐이 나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찾았다.


마치 타자기 같은 키보드는 타이핑하는 감촉과 소리가 마치 이건 내 키보드라는 말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저 타자기 키보드가 있으면 왠지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손을 바라보면 손가락이 길고 직선으로 뻗어있어 손이 참 이쁘다는 생각이 든다.


큰누나와 작은누나도 내 손을 보며 손이 이쁘다며 부럽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하나하나 내 몸에 좋은 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를 사랑하며 나의 자존감을 올려본다.


이후 간장게장과 새우장을 포장하여 집으로 복귀해 처가 가족 모두 모여 새우장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타지로 떠난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다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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