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맛보는 책 읽기
삐-
"다음 정류장은 홈플러스 유성점, 홈플러스 유성점입니다."
버스에 앉아 한 뼘 열린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한 장 넘긴다.
고개를 숙여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건물과 가로수들이 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이내 다시 고개를 숙여 책을 마저 읽는다.
날이 좋은 날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이런 날씨에 집에만 있기 아까워 책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카페에서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길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고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버스에서 여행하듯 정처 없이 이동하며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침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고 주저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 하나를 잡아 앉고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창문을 한 뼘 열어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이내 책을 꺼내 펼쳐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책을 읽다 버스가 정차하면 고개를 들어 올라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흔들리는 버스 위에서 책을 읽다 살짝 멀미가 날 것 같으면 창밖을 바라보며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바라보았다.
그렇게 책과 세상을 감상했다.
책 한 권과 함께 올라탄 버스는 마치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도시 곳곳을 구경했고 독서엔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버스는 달리고 달렸고 책의 페이지도 하나 둘 넘어갔다.
책을 들고 떠난 버스 여행은 일상의 익숙함을 벗어난 새로운 경험이었다.
출발할 때는 현실의 걱정과 압박을 가득 안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여유와 행복이 가득한 만선(滿船)이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떠난 버스는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 더 소중하고 기억에 남았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때 그 책을 넘기던 소리, 촉감 그리고 버스 창 밖으로 보이던 익숙하지 않던 풍경들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잊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평온했던 그날의 감정들이 비디오가 재생되듯 고스란히 눈앞에 떠오른다.
꼭 책을 책상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꼭 버스를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도 정해진 것에 따르지 않는
책 한 권의 여유와 목적지 없는 여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