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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Jul 02. 2021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때 그 음식

이제는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린 쑥국.

그때는 미세먼지와 오염을 걱정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밖에서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았고, 아무 걱정 없이 마구 집어 입속에 넣었다.

어릴 적엔 그게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7살 때 잠시 여수에 살았다.

맞은편 아파트에는 사촌이 살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한적한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는 잔디가 펼쳐져있었고 잔디와 잔디 사이에는 봄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향긋한 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봄이 되면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그리고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외할머니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잔디밭에 숨어있는 쑥들을 하나하나 캤다.

그렇게 쑥들이 바구니 속에 차곡차곡 모아졌고, 더 욕심부리지 않고 우리 가족이 먹을 양만 캐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에서 탁탁탁탁 하는 소리와 함께 ASMR의 도마 소리가 들렸고 이내 부글부글하는 소리와 함께 향긋한 된장 냄새와 쑥 냄새가 나더니  쑥국이 뚝딱 만들어져 있었다


봄내음을 담은 고소하며 향긋한 쑥국을 나는 거의 마시듯 입속에 넣었고 바쁘게 움직이는 숟가락에 밥을 퍼서 쑥국에 살짝 적신 후 고스란히 내 입으로 가져갔다.

쑥국 한 그릇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그냥 뚝딱 해치웠다.


쑥국은 내 어릴 적 밥도둑이었다.


종종 쑥국을 먹고 싶다고 졸랐고 엄마와 함께 쑥을 캐기도 했다.

때론 쑥이랑 잡초랑 헷갈려 잘못 캐기도 했지만 어린 마음에 마냥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수에서 오래 지내지 못했고 우리 가족은 포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포항 집 마당엔 잔디가 없었고 이전같이 쑥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가 쑥국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서 쑥을 캐오셨는지 사 오셨는지 모르지만 쑥을 가져오셨고 쑥국을 뚝딱 만들어주었다.

나는 엄지를 내보이며 맛있다고 이야기했고 역시나 쑥국 한 그릇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자라면서 쑥국보다 더 맛있는 음식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젠 집을 떠나 혼자 살면서 집밥을 먹을 일이 극히 드물게 되었다.


하지만 종종 어릴 적 먹었던 쑥국이 생각난다.

쑥국이 생각나며 여수의 아파트 풍경도 생각나고,

지금보다 훨씬 젊고 정정했던 외할머니 얼굴도 생각나고,

뽀글뽀글 파마를 한 삼각 머리의 엄마의 젊은 모습도 생각나고,

장독대 위에서 점프를 하다 팔이 부러졌던 내 어린 시절도 생각나고,

강아지가 무서워 누나들과 울면서 도망치던 모습도 생각나고

그리고 마치 눈앞에 쑥국이 있는 것처럼 쑥국의 향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냥 쑥을 바라만 봐도 그때 그 시절들이 떠오른다.


집에 내려가면 엄마에게 쑥국을 해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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