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정말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뛰어다니길 좋아하고 말썽꾸러기였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유치원 시절 부끄럼과 지독한 고집을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 공원에서 유치원 행사를 하기 위해 옷을 맞춰 입고 가야 했습니다.
위에는 검은색 티, 아래는 검은색 바지.
하지만 우리 집에는 아쉽게도 검은색 바지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검은색 타이즈만 있었죠.
그러나 어린 수줍음은 타이즈를 받아들일 수 없었나 봅니다.
타이즈를 절대 입지 않겠다고 엄청난 땡깡을 부리던 기억이 납니다.
전날부터 아침까지 엄마와 지독한 씨름을 했습니다.
결국 어렸던 제 고집이 이기게 되었고 타이즈 대신 청바지를 입고 유치원에 갔습니다.
도착한 공원에서 선생님에게 인디언 모자와 옷을 받아 걸치고 기차놀이 같은 것을 했던 걸로 기억에 남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은 다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는데 혼자 청바지를 입고 해맑게 웃으며 기차놀이를 즐기는 제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남아 있거든요.
남들에게 부끄럼 당하지 않기 위해 타이즈를 절대 입지 않겠다고 하고 청바지를 입고 갔지만
오히려 다른 친구들은 검은색 바지인데 혼자만 청바지라 더 눈에 띄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타이즈가 아니라는 행복감에 혼자 청바지의 부끄러움을 잊어버렸나 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치원 때 일을 이렇게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이 신기하네요.
아마 그때의 강렬한 추억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한 장이 남아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래서 사진이 정말 신기한 것 같습니다.
우리를 강제로 시간여행을 하게 만들어 그 시절 그때로 데려가니까요.
제가 어릴 적에는 휴대폰도 없었고 디지털카메라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집에는 필름 카메라 밖에 없었습니다.
24장이 찍히며 어떻게 찍혔는지 일주일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 필름 카메라로 우리 엄마는 열심히 홀로 청바지 입고 인디언 모자를 쓰고 기차놀이를 하는 제 모습을 담았을 것입니다.
빛이 너무 들어와 새하얗게 된 사진이 나오기도 했고, 정말 까맣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셔터를 길게 노출한 사진처럼 사람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면 일주일이 걸렸고 그 사진을 찾아오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열심히 자신이 찍힌 사진들을 골라냈습니다.
그러곤 각자의 앨범에 한 장 한 장 꽂아두었습니다.
지금도 집에 가면 그 시절 소중했던 사진들이었지만 이젠 한 구석에 먼지만 쌓인 채 다시 세상 빛을 볼 날만 기다리는 앨범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순간을 저장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만 사진을 확인할 뿐 1달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안 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필름 카메라가 그립습니다.
현상을 해서 한 장 한 장 확인하던 사진들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