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는 방식
누군가를 너무 감싸려 들면
반대편에 있는 존재가 다칠 때가 있다.
금극목(金剋木)처럼
그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남의 인생에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길신(吉神)의 삶이다.
남의 인생을 도우면서 내 삶까지 깎아 쓰는 것
그건 흉신(凶神)의 삶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내 삶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살아가는 길신의 삶을 마냥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있는 곳이 시궁창이라도
그곳이 시궁창인지 모른 채
자족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길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탄대로를 달리면서도
늘 타인을 돌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들여다보는
흉신의 비약적인 삶의 자세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흉신은
배려하고, 맞추고, 도우며 살아가야만
비약적으로 잘 살 수 있는 것이고,
길신은 자신의 안위부터 살피며
스스로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반듯하게 살아가면
흉신의 삶이 지닌 리스크 없이도
어디서든 평온하게 살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만 흉신들의 경우 자신을 뛰어넘어
이처럼 누구보다도 제대로
잘 살아갈 때 해당하며
하늘은 그런 흉신들을 향해
임계점에 도달하면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없는 크기의 보상을
흘러넘치도록 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시기가 찾아와도
이때 교만해서는 안 된다.
받은 것들은 또다시 흘려보내야 한다.
극단적인 비교일지라도
자신의 삶에 안주하여
고시원, 쪽방촌의 불편함을 모르는
길신의 고요한 삶도 있고,
역세권 한복판을 누비며
남을 돕고, 때로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가는 흉신들의
분주하지만 빛나는 삶도 있다.
'길하다', '흉하다'
이 말들은 남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를 향한 말이다.
내가 나를
쉬지 않고 깎아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나는 흉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내 안에서 부족함 없이 머물 수 있다면
나는 길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은 어쩌면
길신이 거니는 조용한 뜰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흉신의 입장에선 타인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안으로 깊이 있게 재충전하며 깨져 있는
균형과 기운을 다지며
스스로 돌보는 행위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