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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순간이란 그렇게 쌓여가는 것이다. 기다린 후에 오기도 하였고 갑자기 온 것도 있었다. 먼지처럼 잠시 떠돌다 떠나기도 하였으며, 오래도록 멍울로 남기도 하였다. 그것은 지난 사람의 무덤에 기대어 그 사람의 시절을 상상하며 오래된 것 하나를 심연에서 건져 올리고 미소 지어 보는 것이기도 하였고, 아니면 오랜 기다림 끝에 다가오는 신산한 우주의 바람이기도 하였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시간을 이룬다면, 마치 작은 강이 모여 바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이처럼 순간이 흐르는 물을 닮았다면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유유하게 휘돌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의 손과 같은 것을 통하여 은밀하고 포근하게. 그리고 그것들은 온전히 한 사람의 시간을 이루리라.


“애써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 “아닙니다. 마지막을 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아들과 짧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임박한 일정과 먼 길이라 상주인 제 사촌한테 양해를 구하려던 것이었는데, 굳이 밤차로 오겠다고 한다. 제 이모부의 돌연사. 아~ 이런 일은 갑자기 오는가?


12시가 넘어 아들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상은 잘 마쳤나?”. “한잔하지?” 침묵 속에서 술이 오고 가며, 나는 잠시 동기간을 보낸 쓸쓸함을 잊고, 아들이 훌쩍 커 내 술 상대가 되었다는 현실에 감사하였다. 내가 오히려 어린아이가 되어 사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고 말았다. 새로운 단체에 가입한 이야기, 잡지에 글을 써 보낸 이야기, 그림을 그려 친구에게 선물한 이야기..... 취기인지 어리광인지? 한참 후에야 말 많은 아버지의 손이 아들에게 덥석 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의 손은 내 손보다 훨씬 크고 따듯했다. 잡힌 내 손을 천천히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 딴엔 어색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이모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본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나이 들고 수다스러워진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웠을 테다. 생경한 풍경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내내 30여 년 전 저의 작고 보드라운 손의 감촉과 꼬물거림과 같이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다.


생각해 보니,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내 손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엄마가 내 손을 잡아주던 기억마저 어렴풋하고, 심지어 아내의 처녀 시절 부끄러운 손의 감촉마저도 가물가물하다. 하물며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아버지의 손을 잡아준 기억 같은 것은 도무지 없다. 당신의 임종 앞에서의 상황조차 흐릿하니, 어쩌면 오늘의 상황으로 손과 부자간의 정을 억지로 연결해 볼 요량 따위는 언감생심이 아닌가.


하지만 아버지께서 손을 내게 내밀어 주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한순간만큼은 꼭 기억해 내고 싶다. 그날따라 수면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물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낚싯배의 이물(배의 앞쪽)에 앉은 스무 살의 내가 지루함으로 몸을 뒤틀고 있고, 담뱃불을 붙이시던 고물(배의 뒤쪽)의 아버지께서 반대편으로 돌아앉으며 말씀 하셨다. “너도 한 대 피우거라.”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아버지만큼 컸다는 것을 알았다. 배의 이물과 고물에서 두 가닥의 담배 연기가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나는 햇살의 나른함과 망망대해를 등진 아버지의 실루엣 속에서 잠시 시간을 망각하였다. 한참 후, 파도에 배가 울렁거리자 아버지는 바다에 서투른 내게 당신의 두 번째 손을 내밀어 주셨다.


효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버지의 손을 자주 잡아주셨을 거라 믿는다. 유품으로 남은 아버지의 사진첩에는 서울 남산공원의 어느 장소에서 찍은 러시아식 털모자와 양풍의 코트를 걸친 시골 할아버지의 어색한 사진이 유독 선명하다. 여행이 힘들었던 시절, 서울 구경을 시켜준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을까? 할아버지의 심경이 작은 사진 속의 표정에 생생히 살아 있다. 60년 전쯤의 그때, 아버지께서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남산공원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랐다고 나는 추측한다.


오랜만에 내 아버지의 앨범을 펼쳤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곁에 있는 손주의 앨범도 덩달아 펴본다. 손주 아이의 첫 사진 옆에 어쭙잖은 시 한 편이 붙어 있다. 아이의 태명이 ‘봄봄이’였는데, 이름대로 따듯한 봄날 우리에게로 달려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나는 그 아이가 우주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 믿고 있었다.


‘꼬물거리는 손과 입으로’

천사가 왔다길래 / 창 너머로 들여다보니 / 그 소문이 정말이었네 / 한 번도 본 적 없는 천사가 / 꼬물거리는 손과 입으로 / 실제로 거기 있었다네 / 나는 그만 가슴이 뛰어 / 작은 개나리 노란 꽃으로 / 봄 나비 야무진 날갯짓으로 / 햇볕 따스한 아지랑이로 / 첫 순 내민 풀 나무의 순수로 / 우리 천사 맞기로 하였네 / 여전히 콩콩대는 / 이 가슴 가시어질까 / 홀로 살짝 입 모아 / 봄봄이라 불러보았네


내가 아들에게 손이 잡힌 그 날,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집안 4대에 걸친 지난 앨범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았다. 나는 아내와 아들을 느긋이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 속의 손주가 언젠가는 손을 내밀어 제 아비의 손을 품어줄 그림을 상상하기도 하면서 웃었다. 우리는 한 지점의 시간 속에 잠시 머무르며, 지난 60년을 관통하였다. 그것은 흘러간 것이 아니라 유유히 흐르는 것이었다. 아~ 고인이 된 동서의 시간도 마찬가지이리라.


다음 날 아침 아들은 서둘러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텅 빈 집에도 시간은 흘러 여름이 가장 깊은 곳까지 치닫는다. “와~ 이것 보세요.”. 아내 방의 창에 매미가 붙었나 보다. 그것이 고공으로 날아오른 이유를 나와 아내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저의 울음으로 아내가 잠을 깨었고 순간 옆방에서 자던 나를 생각한 것. 아내는 사진을 찍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이 포착의 순간이 우리의 시간이란 이름으로 또 존재하리라. 우주의 흐름 속에서


매미 사진을 찍는 아내의 즐거운 손을 본다. 여전히 곱고 희다. 조금 후면, 저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콕콕 눌러 우리의 시간을 어린 손주에게 보내주리라. “사랑하는 아이야. 이게 매미란 것이야. 오늘 아침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즐겁게 노래를 하네,” 나는 그러한 아내의 손을 꼭 잡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오랜만에 느꼈다. 예전처럼 보드랍고 따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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