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삼라만상은 때가 이르면 맑고 투명해진다는 주장으로 계절로 치면 가을이 더욱 그런 계절이라 한다. 빈 하늘에 매달려있는 미처 따내 지 못한 감은 날로 투명해져 가고, 진하던 초록의 두께를 버리고 반투명의 갈색으로 엷어져 가고 있는 나뭇잎도 그렇다. 하물며 사람도 때가 이르면, 아이같이 맑은 피부의 모습으로 변해간다고 했다. 수년 전 병실에 오래 누워계셔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안색 또한 그랬다.
수족이 자유를 잃어 가던 만큼의 비례로 살갗의 투명도가 커졌다는 물리학적 추측만 나의 마음과 병실을 채웠을 뿐, 하염없이 이별의 시간만 기다려야 했던 어머니와 나의 가을이었다. 나는 이전부터 대체로 모든 꽃의 느낌이 그런 엷은 이미지라 생각하곤 하였다. 그러나 속이 여물지 못했던 나와 마주하던 그 가을, 어머니의 엷디엷은 얼굴은 낙엽일지언정 꽃일 수 없었다.
엷고 투명한 느낌이 어디 가을만의 산물이며, 그러한 엷음을 관찰하며 사유함 또한 계절에 의하여 속박되랴. 더위로 며칠을 거른 산책길에 하필이면 나팔꽃이 눈에 든다. 문득 그런 엷고 투명하다는 것에의 연민을 뜬금없이 성하(盛夏)의 볕 아래에서 확인하려는 듯이 선뜻 여름꽃 앞에 섰다. 꽃잎의 엷기야 봄철의 벚꽃이나 가을의 코스모스도 뒤지지 않겠지만, 이 꽃의 엷음은 또 다른 느낌이라 할까? 벚꽃이나 코스모스가 무리의 화려함으로 계절을 맞이한다면, 나팔꽃은 오로지 개체로 드문드문 달려있어 그런 연민을 더욱더 짙게 한다.
이즈음 산 주변 집들의 담장엔 어김없이 그 아침 꽃이 피어있다. 유독 아침에만 만개하고, 햇살 뜨거운 대낮이면 풀이 죽어버리는 질기지 못한 꽃이다. 한 송이 따서 입에 물면 입술 사이로 곧 녹아버릴 것같이 약하기만 하던, 그래서 절화(節花)한다는 행위도 별로 죄스럽지 않아 입에 물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그 나팔꽃이다.
습관처럼 붉은 꽃 한 송이 입에 따다 물고 집으로 왔다. 사전을 들추니 생물학의 분류로 메꽃과의 꽃이란다. 생각대로 같은 족속임이 분명하여 메꽃을 볼 때면 늘 나팔꽃이 생각났고, 나팔꽃을 따던 오늘 아침 여지없이 메꽃을 떠올렸다. 고향 갯마을에 지천이던 꽃, 메꽃. 정확하게는 갯메꽃이 아닐까 한다. 어머니가 밭일 중일 때면 하릴없이 갯가의 모래톱에서 놀곤 하였다. 주위에 꽃들이 지천이었겠지만, 해당화니 백합이니 하는 이름난 꽃들은 몰랐다. 오로지 그 초라한 꽃의 이미지만이 유일하게 여름 밭의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꽃 주위에는 늘 소소한 해풍이 일곤 하였다. 가끔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리던 얼굴이 눈에 들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그 바람으로 말미암아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돌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 주위의 바람은 일상이었으며, 늘 이겨내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람이란 그저 지나가는 것이며, 어머니가 허리를 펴는 순간 또한 땀을 식히는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해풍이 드세고 모래가 휘날리던 날이면 허리 펴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린 나에게 일정한 시간을 간격으로 내가 뛰놀던 메꽃 주위를 살피는 어머니의 표정이 한 번이라도 읽혔을까. 어머니는 몇 발치 너머에 언제든지 서 계셨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바라보던 메꽃 잎의 흔들림 곁에는 늘 머리를 동여맨 어머니의 흰 머릿수건이 따라 나풀거리고 있었으므로 어린 눈에도 메꽃과 어머니의 모습이 묘하게 겹치곤 하였다. 하지만 그때도 어머니는 꽃일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갯메꽃처럼 어머니 또한 참으로 작은 체구이셨다.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메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땅을 기어 다니듯 피는 것이 고작인 누운 꽃의 모습은 머리를 든 여느 꽃처럼 화려하지 못하였다. 나팔꽃을 닮았으나 크기가 작아 볼품이 덜하였다. 짙은 분홍이 되지 못한 부끄러운 연보랏빛 꽃잎. 한철 모래의 풀 섶에 어김없이 피지만 여느 꽃처럼 당당하게 계절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어서, 땡볕을 기면서 길이로 이어진 줄기만이 질긴 생명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벌이나 나비가 자주 찾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았다. 다육의 줄기는 민들레나 씀바귀같이 흰 진물이 뜨겁게 흘러내릴 것 같기도 하여 가끔 분질러 보았지만, 속은 그렇게 진하지 않았다. 그냥 수수하고 외로웠다고 할까? 무시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조용히 흔들리는 꽃은 내게도 보잘것없는 작은 꽃일 뿐이었다.
내 공간에서의 어머니의 자리는 먼지가 앉은 책장의 한 곳. 액자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 빛깔이 엷은 고동색으로 바래어 가고 있었음을 오늘 알았다. 성에 차지 않아 오래 묵혀둔 앨범을 열고 아침의 풀 섶에서 만난 메꽃 같은 어머니의 색을 보려 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병상에서처럼 입을 다문 채 미소만 지으신다. 도리 없는 나는 메꽃처럼 맑고 홍시처럼 투명하게 익어가던 당신의 삶을 추억하며 몇 자 되지 않는 초라한 글로 옮겨놓을 뿐이다. 어머니는 그때에도 여전히 엷디엷은 꽃이었지만, 불민했던 내게 이제야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는 한 송이의 꽃으로 오시다니.
나의 공간에 유년의 풍경이 머문 것은 실로 잠시였다. 그러한 사진 속의 어머니는 수년 전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내게 아쉬움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시기 바쁘다. 따 온 나팔꽃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리고 내가 입에 물고 내려온, 벌써 시들어 버린 꽃이 기왕이면 어머니의 밭에서 피던 그 갯메꽃이었으면 하였다. 이런 나를 보고 혹자는 “이제 당신도 나이가 찼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그 말을 긍정하지 못하겠다. 내 공간 속의 어머니에게 나는 여전히 작고 위태로운 어린아이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