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첩단상

매화 예찬 1

일상을 말하다

by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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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화 만나기

해마다 매화를 보러 나서는 길은 거의 생리적 이끌림이다. 타인의 전언이 그랬고, 내 몸의 뜬금없는 준동을 보면. 거기에 분명 꽃이 피었을 테다.

어느 농부가 만든 매화밭에 꽃이 막 터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꽃을 여러 해에 걸쳐 만나는 중이다. 꽃은 해마다 피고, 꽃을 보려는 나의 욕망 또한 그침이 없다. 해마다 도적의 마음으로 배낭 속에 가위를 찔러넣고, 꺽어 온 꽃가지 몇 개를 내 화병에 꽂아 두었던 일, 완상하며 선비의 여유를 흉내 내어 보던 일이 있었다.

올해엔 그 생각을 접었다. 꽃가지 꺾기를 그만두고자 나설 때부터 각오하였다. 마음이 가볍다. 이것은 소유를 향한 마음의 진보인가? 아니면 열정의 퇴색일까? 꽃을 대하는 시선 또한 한결 가벼워졌다. 하물며 꽃에 근접하여 더 크고 선명하게 사진을 담아 오려는 마음조차 버리기로 하고 흐릿한 이미지의 사진을 달랑 한 장만 찍었다.

나와 매화의 만남은 이 정도로 족하다. 거기에 청매 몇 송이가 예외없이 피어 있고, 내가 그 꽃을 만나려 거기에 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꽃과 몇 마디를 나누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2. 또 매화 / 내 집 앞의

너는 닮고 싶은 것이 참 많구나. 향기, 색, 그리고 해마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옹골차고 야무진 둥치. 하물며 애써 너를 그려 곁에 두었던 하얀 선비들의 그 마음조차 나는 닮고 싶구나.



3. 홍매

갇힌 시절 서러워 문득 뜰에 선다. 회색 마음 비웃으며 꽃은 붉고. 때맞추어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 타고 날아가 버릴 듯 꽃의 자유를 본다.

아~ 꽃의 바람과 나의 바람. 찬 바람은 오래도록 나를 가두었고. 이제 꽃은 그 바람을 타려 한다.

차마 날아가지 못한 몇 송이의 꽃. 애처로운 정인 반기듯 나를 기다리던 그 꽃. 나는 그만 고마워서 눈물이 나고. 아린 가슴 붉게 물들다.



4. 매조(梅鳥)

화투의 2월을 '매조梅鳥'라 부르는데, 매화꽃과 새가 그려져 있음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 새를 '휘파람새'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에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식으로는 아마도 '꾀꼬리'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견이 많다.

암튼, 매화꽃에는 새가 즐겨 찾아드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꽃과 새는 2월을 상징하는 한 폭의 동양화가 된다. 물론 둘의 조우가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신산하고 야문 매실들을 나뭇가지에 튼실하게 매달아 놓을 테지만 말이다.

우리 아파트 매화나무에도 새들이 들었다. 여러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로 요리 뛰고 저리 뛰는데, 그 분주한 풍경이 그만 한 폭의 '매조' 그림이 된다. 새가 휘파람새가 아니면 어떻고 참새면 어떠리.

이른바 시절이 매화의 시간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절에 취하여 꽃과 새를 한참을 바라 보았다.



5. 매화나무 한 그루

빈 언덕에 매화 한 그루 / 이른 봄 건조함 뒤로 꽃은 빛나고 / 나무는 해마다 둥치를 키웠을까 / 나는 문득 성근 세월이 아프다

언덕은 비기도 하고 채워져 있기도 하다 / 선들 부는 바람 탓에 나무와 마주서고 / 눈치챈 바람이 잠시 걸음 멈추었다

애처로운 풍경에 몰려드는 적요 / 간간이 하얗게 꽃망울 터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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