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첩단상

매화 예찬 2

일상을 말하다

by 이종민
매화2.jpg



1. 매화 도적이 되어 1

이맘때면 고질병이 도져, 아내의 만류에도 도둑고양이의 심정이 된다. 하기야 남의 산을 자신의 것인양 울을 둘러치고, 푸성귀를 심고 터의 징표로 매화 한 그루 심은 나무의 주인장도 애초에 도둑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나의 입장이 면피될 것은 아니었으니 가지를 꺾는 순간 내내 주위를 살폈다.

일 년에 한 번. 나의 욕심으로 인해 저 꽃은 열매를 잃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며칠 꽃에 푹 빠져 완상을 하고 그림을 그릴 터이다. 아~ 해마다 꽃 도적. 그러고 보니 꺾을 때 꽃은 태연하였으나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꽃보다 하수.


2. 매화 도적이 되어 2

산 매화 한 송이 훔치려 새벽이 바빴다. 아뿔사 내 앞의 작은 산에는 내가 그린 그런 매화 한 송이 없고, 있다 하여도 울타리를 치고 사람이 가꾸는 유실수가 고작이다. 책상머리 유리병에 모양 좋은 가지 하나 꽂아두고 며칠을 보려던 속셈은 언감생심, 잠시의 꿈은 고작 도적의 마음이었을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울타리 너머로 벙글은 매화 가지 사진 한 장을 찍어 와서, 일기장에 아쉬운 듯 그려본다. 조악한 그림. 그래도 참인 듯 초라한 내방도 잠시 매화향 번지니, 분주한 아침 나는 그것을 쫓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여전히 손끝은 시려도 영락없이 봄이 아닌가. 봄.


3. 매화 도적이 되어 3

다행이지 불행인지, 저 붉고 봉긋한 여린 것들 사이로 오리나무 가지 끝을 뚫고 나오는 또다른 파랗고 어린 것들을 보았다. 어느새 비릿한 냄새가 산속에 퍼지기 시작하였으니, 오래도록 早春의 향에 취하려던 마음이 그만 급해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청매의 자리를 살피니 이미 흐드러져 눈밭을 이루었고, 찬바람에도 나른하게 익은 향의 유혹이 분분했다. 내일모레면 이 꽃망울 또한 그럴 것이니 계절은 나보다 빠르다. 다음번 걸음이면 이도 저도 못 볼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꽃은 올해도 도둑의 마음을 지닌 나를 온전히 가르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꽃과 그 꽃을 가꾼 주인의 입장이 되어 본 시간이 다소 길어진 것 정도. 여전히 속이 여물지 못한 내게 꽃은 향기를 감춘 하나의 설렘이었다. 하물며 연분홍 엷은 빛 마저 제 몸을 빠져 나와 여기, 내게로 번지는 것이니. 나의 결심은 꽃 앞에 또 그만 무너지고 마는 게 아닌가.

아내는 애처로운 가지의 밑동에 달린 하나의 꽃망울도 내치지 못하였다. 내가 어찌 속이 훤히 비치는 양풍의 화병에 담았다고 탓을 할까? 오히려 박하고 가벼운 것이라면, 잠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꽃을 마음 속에 깊이 넣어두지 못하는 나의 철부지 짓이다. 이 애처로운 모습의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설레발 치는 꼴이라니.

혹여라도 보시는 여러분께서는 부디 꽃을 보내는 아쉬움이라 여기시고 스쳐 주시면 감사한 일입니다. 모자라는 이가 써 보는 ‘送早春詞’라 여기시며.



4. 기어코 욕심을 이루니

청매의 끝 서슬이 푸른데

아랑곳없이 나는 부자가 되었다

작은 꽃에 연신 코 대어보니

영락없이 바람 탄 봄새의 짓이고

안타까운 꽃은 제 향을 낸다

떨어진 꽃잎 차마 치우지 못했다

하르르 사라질 듯 새와 나의 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화 예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