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가을이 가니 겨울이 온다. 옷이 두터워지고 모자를 눌러쓴 지 여러 날이 지났다. 달라진 게 또 있었다면, 사물을 바라보는 내 눈의 방향과 폭이 이전과 다르고 시선의 깊이 또한 잔뜩 몸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온도계의 막대가 줄어들 듯 몸이 먼저 알고 스스로 움츠린 것일까? 기지개를 켜려다 말고 한기를 느껴 목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 계절을 표현한 옛 그림의 화가는 휘몰아치는 눈발에 도롱이를 눌러쓴 노옹을 쓸쓸히 그려 놓았는데,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묵묵히 걷는 노옹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볼 때마다 생각하였다. 짐작키 어려운 노옹의 의뭉한 태도 같은 것이 겨울의 본모습이 아니었을까? 캔버스 앞에 선 지금의 나 또한 노옹의 마음이다. 나의 시야 또한 하늘, 바다, 산으로부터 급격히 하강 혹은 송환되어 거리의 어느 모퉁이에 머무른다. 온통 무채색의 쌀쌀한 기운 속에 겨우 눈을 뜨고, 딴엔 겨울을 그려보려는 것이다.
빛 찾기의 절박함. 차가워진 기온에 대한 보상이기보다는 그로 인하여 계절이 주는 쓸쓸함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니, 탈 고독이라 할까? 이즈음이면 사람들이 공모하는 뜻 모를 흥분에 애써 동참해 보기도 한다. 겨울빛에 대한 나의 집착은 이처럼 절실하고 애절하다. 한해의 남은 날짜를 세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거리의 불빛이 화려해졌다. 빛을 그려야 하는 내겐 다행이라 할까? 빛 속으로 드는 걸음이 바쁘다.
당분간 푸르고 붉음을 피하여 무채색이 흗뿌려진 거리에 몰두할까 보다. 지난가을 나는 색체의 화려함에 소름이 돋았고 선명의 희열에 몸을 떨어야 하는 사치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을 보내고도 허전해하지 않아야 할 것. 밝음과 선명의 허기는 밀도로 채워야 할까 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그림의 제목을 ‘빛의 밀도’라 이름 지었다. 물감이 더해지고 종이가 두터워졌다. 오호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의 과정을 칠하는 것인가 보다. 어디 나뿐일까? 겨울이 오면 허기진 속내에 붓질이 애절하다. 아~ 두터워져야 마음이 놓이는 계절, 겨울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