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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Jun 07. 2024

빛과 책, 그리고 리모델링

도서관 산책

  

사하도서관 / 이종민 그림

사하도서관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야 한다. 어쩌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운명이었던지도 모른다. 1984년에 지어졌으니, 당시에 책 읽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고요와 사색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이 커뮤니티의 중심에서 다양한 시민 문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 지금을 생각하면, 아득한 시절이었다.


숲이었던 터가 지금은 많은 집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 또한 세월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도서관은 자신감이 넘쳐난다. 2020년 리모델링 이후 새 피로 수혈을 받은 듯 땅과 건물에 생기가 돈다. 오래된 건물이 산뜻하게 바뀌었다. 부드럽게 연결되는 기능 또한 손색이 없어서 많은 오래된 도서관의 재생에 희망을 준다. 열람실에 사람이 가득하다.


특히 건축적으로 돋보이는 것은 기존의 타일 위에 군데군데 디자인해 놓은 부드러운 색상의 수직 루버(rouver)이다. 루버란 근대 이후 도서관의 중요한 디자인 요소였다. 빛을 조절하는 장치로 각도를 바꾸어 가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는 장치이다. 인공조명이 대세가 된 지금은 그 역할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현대의 도서관 건축의 디자인에 수월찮게 차용된다. 빛으로 시작하는 도서관 건축의 상징이다.


빛과 책. 빛이 없는 곳에서의 책 읽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책상 위에 밝은 빛이 내리고, 빛은 책을 따듯하게 쓰다듬는다. 그 위에 또 하나의 빛이 쏟아지니, 이번의 빛은 사람의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 호기심 가득한 이 빛에 대하여 옛사람이 이르기를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한다.’라고 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이며 합체인가.


그리하여 합체된 빛들은 훗날 또 하나의 새로운 빛이 될 준비를 한다. 그 빛은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오래된 것들의 기억하기도 하며, 지친 사람들을 위무하기도 할 것이다. 빛이 되기 위한 빛들의 준비. 놀랍게도 도서관에서는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빛은 책이며 책은 또 다른 빛이 된다. 하물며 매일매일 새로움으로 재탄생(remodeling)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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