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산책
부산점자도서관
1889년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보르헤스는 평생 시력의 저하에 시달리다가 1950년 후반에 완전히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되었다. 도서관과 책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었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서관의 사서로 시작한 도서관과의 인연은 직업뿐만이 아니다. 책과 도서관 이야기는 그가 남긴 수많은 시와 소설의 군데군데에 숨어서 그의 빛나는 문학을 완성하고 있다.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작가는 도서관을 ‘우주’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도서관 서가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아주 낮게 난간이 둘려져 있는 이 진열실들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들이 나 있다. 그 어떤 육각형 진열실에서도 끝없이 뻗어 있는 모든 위층과 아래층들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그리고 도서관은 끝이 없다고 단언하고, ‘도서관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라고 결론지었다.
점자 도서관에 들어서면 유독 보르헤스의 시각과 문학적 상상력이 떠오른다.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았던 문학가에게 도서관의 공간감과 책의 냄새와 촉각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눈을 지그시 감아 본다. 불명확한 실루엣 너머로 다가오는 빛. 작은 점자들의 행진과 그 촉각으로 다가오는 진리의 늪. 나는 그것을 건너 끝을 보려 애쓴다. 하지만 빛의 끝은 자꾸 꼬리를 감추고, 나는 또 새로운 빛을 붙잡으려 애쓴다.
소설가의 표현이 맞았다. 모든 도서관, 그곳은 우주였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간의 벽을 가르는 서가의 인상에서처럼 몽상적이다. 홀린 듯,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간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묘한 기운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인식과 진리의 물결이 그곳에서 휘돌기 시작한다.
*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르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의 관장직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