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부의 수단이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사람의 욕심은 때론 도를 넘어, 이다지도 비정한 풍경을 남긴다. 내 것이 아니라도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오래전 우리 아이들이 수영 모자를 쓰고 놀던 곳이다.
그 위의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차리고, 몇 년이 지났던 때 였던가 보다. 그 곳이 사십년이 지나자 아파트는 층수가 훌쩍 높아졌는데, 풀장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어찌 비정하다 아니 할까. 그 와중에 벚나무 이파리는 초록에 여념이 없다. 그때의 나무인지, 그 다음 세대인지 모르겠으나. 나무의 입장이라면 아무렴 어떠리. 나무가 사람보다 훨씬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무는 생명이 길다. 나무의 마지막은 결코 추하지 않다. 갈수록 아름답고 멋지게 변한다.
내 눈은 아련함에 잠시 머물고, 여전히 푸른 나무가 그러는 나를 비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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