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첩단상

꽃을 자르다

일상을 말하다

by 이종민
그림 이종민


한참 고민하다 큰 꽃을 잘랐다. 좀 더 두고 보아도 될 일이었건만, 그 아래에서 막 피어오르는 어린 꽃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작은 화분이 여러 송이의 꽃을 감당하기에 얼마나 버거울까? 그렇다면 큰 꽃이 양보하는 게 이치가 아닐까 했다.


아쉬운 마음에 자른 꽃은 병에 꽂아 놓고 보다가 그림으로 그려두기로 한다. "한 때, 저리 아름다운 꽃이 있었노라." 화려했던 큰 꽃의 시절일랑 스케치북에 남겨, 두고두고 회상하면 될 일. 생각해보면 그게 자연은 물론 세사의 이치이고 도리이다. 시간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상치 않게 오래 계속되는 사회적거리두기로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에 없던 습성이 생긴 것도 당연한 것. 집 안 구석구석의 물건에도 눈과 손이 많이 간다. 오늘 자른 꽃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 세상 물정에 어두워진 것은 아니니 다행이라 할까. 스마트폰을 통하여 시시각각 세상과 소통하니 말이다. 이 정적인 상태에서도 변화는 끊임없으니 사간은 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세상은 바야흐로 정치의 시간이었는데. 연설과 글로 일방적으로 주장하던 이전과 달리 개인의 속내와 집단의 성향이 속속들이 드러나니 정치인들도 꽤 곤혹스럽겠다. 강력한 수단이던 슬로건과 이념의 공허가 드러나고. 진짜 실력에 대하여 가늠하는 일은 이젠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령 몇 개의 공화국을 거쳐 정치 생명을 이어온 진부한 정치인이 있다 치자. 시대에 맞지 않는 그 노회한 분께서는 자신의 실력을 곰곰 생각하시어, 꽃이 스스로 고개를 꺾을 때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으시면 어떠실지?


병에 꽂힌 잘린 꽃을 보며 겹치는 생각들이 많다. 시간이란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앞으로의 것이라야 아름답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고집과 관념에 매몰되지 않고, 진짜 실력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기꺼이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 때가 되면 꺾일 자세는 되었는가? 그리하여 아름다운 과거로 남을 준비는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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