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첩단상

다 담을 수 없는 나무

일상을 말하다

by 이종민
그림 이종민


도저히 다 담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 나는 그것을 기꺼이 천년 나무라 부르고 싶었다. 소설가 마루야마-겐지는 그의 소설 ‘천년 동안에’에서 나무의 입을 빌어 나약한 인간에게 말했다. “잘 태어났다. 이 세상은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고 강하게 바라는 자만을 위해서 전재하는 것이다. 살아라! 겁내지 마라! "


며칠 사이 동서와 친구의 죽음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오늘 불길처럼 번져 오르는 나무의 생명을 그린 그림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하여 생각한다. 생명, 그것은 얼마나 오래 지속하여야 하는가? 그것의 상실은 왜 이다지 슬픈가? 그리고 내가 저 끈질긴 생명의 나무를 내 그림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성찰하자.


화판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오호라. 내가 저를 다 담지 못하는 이유는 나무가 키운 덩치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나무의 꿋꿋함이다. 천년을 지나도록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봄에 잎을 피우고 가을이면 거두는 성실한 순환이라든지, 굴 껍질처럼 거친 등걸에서도 아기 손같이 보드라운 순을 발아시키는 순한 고집이라든지. 그런 것을 마땅히 발견해야 함이다.


소설가의 관찰도 결국 그러했다. 끊임없는 의지. 참 생명은 거기에서 온다. 천년 등걸의 나무가 그러하듯, 둔한 내 붓끝에도 발아하는 생명이 있지 않을까? 나무야 나무야, 천년 나무야! 매번 온전하게 다 담아내지 못해도 내가 계속 너를 그려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생명의 영원함에 대하여 생각한다. 아~ 죽음 또한 큰 순환의 한 절차. 어찌 그분들의 생명이 사라졌다고 말할까?


천년의 나무를 닮아, 나는 그들의 죽음 앞에 다시 서련다. 슬퍼도 아파도 지금은 꿋꿋해야 할 때.


* 그림은 수영사적공원 내의 푸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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