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일
도시는 한때 산업의 심장으로 뛰었다. 공장의 굴뚝은 도시의 시간표처럼 하늘을 오르내렸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뜨거운 생계를 일구었다. 그러나 산업형 도시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고, 세계가 이윤의 지도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심장은 조금씩 주변부로 밀려났다. 어느 날부터 공장은 더 이상 우리의 이웃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일터를 잃은 자리 위에 작은 가게를 하나씩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소상공인의 간판들 사이로 사람들의 발길은 사라졌다. 소비의 주체가 변하고, 도시의 중심은 빈 상가만을 남긴 채 조용히 빠져나갔다. 우리가 살던 도시는 어느새 스스로의 껍질만 남은 채 ‘비어가는 원도심’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도시가 바뀌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흐름일지 모른다. 제조의 시대에서 관광의 시대로, 산업에서 문화의 시대로. 그러나 그 변화는 도시 스스로 준비했을 때에만 ‘진화’가 되고,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하면 ‘침몰’이 된다.
광주광역시는 미래 먹거리로 데이터 기반 AI 산업을 말한다. 그러나 전력 하나 준비되지 않은 도시 정책은 데이터센터를 기초만 준비하게했고 컴퓨팅센터는 시작도 하기 전에 남도의 바람 앞에서 자리를 내주었다. 미래는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반과 구조, 그리고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그럼 현재는 어떤가.
도시는 부채의 무게에 눌려 있고, 시민의 삶은 지하철 공사로 가려져 있으며, 문화예술 정책은 여전히 정치의 뒤안길에서 헤맨다. 광주만큼 다양한 행사와 문화적 감수성을 품은 도시가 또 있을까. 문제는 문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화를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는 공간에서 자라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자란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기관의 자리에, 전시기획의 자리에, 도시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자리에 전문가 대신 선거의 계산표를 앉혔다.
이 도시의 원도심이 텅 비는 것은 단지 상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도시,
사람을 세우지 못하는 행정,
사람을 가꾸지 못하는 문화가 그 자리를 비워버린 것이다.
지금 이 도시에는 장기 비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전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사람의 수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시민의 문화 수준은 이미 이 시대에 발맞추어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도시의 리더십이 아직도 오래된 구구단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은 이미 인수분해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건물의 불빛이 아니라
그 불빛을 보고 다시 걸어 들어올 사람의 마음이다.
도시는 사람으로 살아난다.
문화는 사람을 통해 숨쉬고, 경제는 사람의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온다.
비어가는 원도심은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도시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을 가꾸는 일,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전문가가 제자리에 서고,
시민의 감각이 정책의 기준이 되고,
문화가 정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그날.
도시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발이 아니다.
제대로 사람을 세우는 일.
제대로 사람을 선택하는 일.
도시를 사람의 속도로 회복시키는 일.
도시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걸어 들어오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