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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후벼 파는 몸짓들이 있다

by 잡귀채신

새벽마다 수영을 배우러 다니기로 했다. 해수면도 상승한다는데 물에 빠져 죽지는 않고 싶어서다. ㅋ 그전에 길바닥 위에서 구워져 죽지 않으려고 5시 반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셋째 날 즈음에 중이염이 생겨서 그마저도 무산되었지만...... 하지만, 건진 게 있다. 오랜만에 가슴을 후벼 파는 몸짓을 발견한 것!



구부정한채로 낡은 구두를 정직하게 내디디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는 어른김장하 선생님의 걸음.

뒷것 김민기 선생님이 면밀하게 무대를 노려보며 턱을 매만지시는 손가락의 불안한 딱딱거림.

'왜냐고 하면 저도 몰라요'하며 주저함이 없던 김관홍 잠수사의 긴장된 준비운동.


이런 몸짓들이 있다.


수영장 가는 새벽길에 혼자 동분서주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자세히 보니 쓰레기를 줍고 계신다. 그런데 어떤 쓰레기는 비닐에 담고 어떤 쓰레기는 구석에서 길밖으로 꺼내만 놓는다. 그러고 보면 약간 장애가 있으신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데, 나보다 어려 보이셨다. 걸리적거리는 내향인 성향덕분에 말을 잘 걸지도 못하지만, 워낙 빠르게 이리저리로 거리를 휘저으시기 때문에 말 걸 타이밍 잡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 움직임만 황망히 보고 있기를 며칠째, 근처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화내듯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 거 장애인이잖아. 장애인. 지체장애인. 근데 즈이 할머니 쓰레기 줍기 편하라고. 그거 때문에. 응. 그 때문에 저래. "


화내듯이 설명해 주시고 화내듯이 새벽부터 덥다며 안부하시더니 화내듯이 사라지셨다.

할머니가 공공근로를 하시는데, 허리가 안 좋으시니까 줍기 어려운 쓰레기를 줍기 쉽게 재배치하는 작업을 매일 새벽마다 하시는 거였다. 킁. (누가 내 코에 와사비 뿌렸누?)


땀을 뻘뻘 흘리시기에, 슈퍼에서 음료수를 드리려고 사긴 샀는데, 예측을 벗어나는 움직임과 그분 안중에 내가 없음 때문에 전달을 겨우 했다. 의심 없이 음료수를 받고 주는 사람 속 시원하게 원샷하셨다. 내가 돕는 건 절대 못하게 하셔서 못 도와드렸다. (진짠데..)


그런 식의 몸짓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깃들여있다. 그 사람들이 원래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지키려는 것들을 위한 연약하고 인간적인 몸 짓.

안 죽으려고 한사코 몸사리기 바쁜 내 몸에서는 나온 적 없는 몸 짓.

안무 짜듯이 나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아직 그럴만한 재간이 못 되어서 슬프다.


이렇게 지나치지않고, 기리고, 잠시 또 잊고 살아가다보면 이상적인 본보기를 향한 힘겹고 애처로운 접근을 방지하고, 문득 나의 어떤 작은 부분이 되어있는걸 발견하게 되겠지.


내일은 이름이라도 한번 여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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