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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03. 2021

소국(小菊)이 피는 저녁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노란 소국(小菊)이 피는 저녁이면 아버지의 기일이다. 나는 향불도 없이, 작은 제사상을 차려놓는다. 노모와 둘이서 기도를 드린다. 절박한 사람은 모두 외로운 사람이라고, 사람의 뒷모습이 공중전화박스로 보인다면 거짓말도 진심이었을 거라고, 나는 혼잣말을 피워낸다. 아버지는 소인국의 시민으로 태어났을 거예요. 어머니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지만, 그래도 마당의 소국은 아름답다. 나는 제사상 한쪽에 빈 접시 하나를 올리고, 그 안에 노란 소국의 향기를 햇과일처럼 담아 놓는다. 이 세상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뉴스에서는 오늘도 소인국으로 가는 막차는 끊긴지 오래라고, 객실마다 사투리가 가득하다고 난리다. 노모와 나는 속보처럼 작은 제사상을 물리고, 더 작은 노란 소국 한 송이를 꺾어 음복한다. 아직 피지 않은 소국 한 송이에 귓속말을 전하는 동안, 서쪽 밤하늘에서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노랗게 피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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