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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03. 2021

후박나무의 가을밤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제 슬픔에 발이 걸려 우는 아이. 그 우는 얼굴을 보며, 귀엽다고 웃는 사람. 그 웃음이 되려 슬퍼 보인다며 우는 사람. 울음과 웃음을 합하면 뭐가 되는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술만 마시는 사람. 후박후박 술에 취한 나무에서 스위치를 발견했다며, 무작정 건배건배 외치는 사람. 후박나무에 스위치가 어디 있느냐 안주발 죽이듯 우기는 사람. 그걸 또 굳이 증명해 보겠다고 술에 술을 붓는 사람. 기어코 후박나무의 스위치를 찾아 내리는 사람. 쯧쯧 혀를 차는 사람. 그렇게 전기가 끊긴 후박나무 밑에서 가을은 어두워지고, 이제 혼자구나 싶어 고개를 들면 필라멘트를 끊고 찾아드는 기억들. 기억을 마주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들. 이런 가을에는 허름한 작명소에 들러 이름이나 고쳐짓고, 그 이름으로 다시 고아가 되려는 사람들. 술 취한 사람과 출입금지 입간판을 발로 차는 사람들. 잃어버린 부모도 없이 부모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 상황이 웃픈걸까. 폭탄주처럼 울고 웃는 거리들. 그 거리에서 주정의 행방을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아이에게, 고아인 내가 너의 부모였구나 싶은 가을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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