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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25. 2021

나라는 슬픔을 마주해볼까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달팽이를 모아 나라를 만들어볼까. 슬픔도 기쁨도 아주 느리게 전해지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볼까. 그 나라에는 달팽이보다 더 느린 소문들이 살아서 눈물이 웃음을 앞질러 가는 날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려면 섣달 열흘의 시간이 필요하고 또 누군가를 용서하려면 낮과 밤이 같아지는 날을 기다려 손을 내밀어야만 할 테지만, 그래도 미친 척하고 달팽이를 불러 모아 첫눈 내리는 날씨 같은 나라를 만들어볼까. 출근도 집에서 하고 퇴근도 집에서 하는 달팽이의 제국을 건설해볼까. 누가누가 느리게 죽나, 배춧잎 한 장 내기도 하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볼까. 하지만 달팽이에겐 배춧잎 하나도 이미 천산북로. 마주치는 풍경은 생에 단 한 번뿐인 감정의 절경. 거봐, 느리게 산다는 게 보기보다 쉽지 않지. 그래서 달팽이들은 등에 나라를 지고 사는 거야. 그 나라는 동사무소이자, 배꼽 같은 슬픔이 발급해 준 주민등록증. 늘 제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허공이 남는, 정말 남은 거라곤 첫눈 오는 날씨로도 측량할 수 없는 적요로움. 그래도 달팽이에게 기별을 넣어 나라는 이름을 천명해볼까. 기분과 타협할 수 없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볼까. 달팽이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나라는 슬픔을 마주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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