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마음조각가 May 12. 2022

수련이 피어있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봄날 뜻모를 속울음에 걸터앉은 사람처럼 물 위에 수련이 피어있다. 누구도 마음 다치지 않게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리운 것들은 서로의 모서리를 숨겨가며 향기를 품는 중이다. 향기 닿는 거리까지가 이번 생에 내가 묵을 숙소의 반경. 하지만 세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한 길 물속. 하루만 젊었어도 바짓단을 접고 물에 스몄을 텐데, 이제는 자기 울음에 빠져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나이. 수련을 떠나 사는 마음도 아울러 헤아려야 하는 나이. 그걸 아는 사람처럼 수련이 연못의 껍질을 뚫고 나온다.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을 읊조리는 사람처럼 절체절명의 이미지를 빠져나온다. 생이여, 정답을 묻지 않았으니 오답으로 답하마. 이미지에 붙들려 우는 일보다 더 크고 외로운 형벌은 없다. 그러니 한시바삐 수련에서 빠져나와 수련에 붙들려라.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울고 전력을 다해 웃고, 꽃 피워내라. 그럼에도 수련의 이미지를 벗어난 향기가 코끝에 닿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수련하라. 자신을 예배하라.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그늘을 찾아 피어나라. 나 요즘 그렇게 섬세하게 마음 수련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번 사용한 소화기는 어떻게 처리하는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