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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May 11. 2022

한번 사용한 소화기는 어떻게 처리하는 건가요?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밤과 낮이 뒤바뀐 영혼이 있다. 깊은 강이 뒤척임 없이도 물의 흐름을 바꾸듯 잠은 헐거운 스웨터를 벗어던진다. 금세 뒤집히는 수면의 동작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밤의 보풀들. 손톱 밑이 까만 어미처럼 어린 자식의 울음을 떼어주는 마음. 속 깊은 밤이 되어서야 안 아픈 곳이 없고, 이 봄밤에는 다친 마음조차도 스스로 간병해야 한다며 이마에 찬 손을 얹는 마음. 낮의 언어가 밤의 언어가 되고, 밤의 언어가 낮의 언어가 되는 그런 불면의 시절. 비상용으로 걸어둔 생각을 꺼내어 애써 잠을 지운다. 깨어있는 것들은 여전히 눈을 뜬 채로 잠 들어있고,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캄캄한 노래에 귀 기울인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불면. 누가 좀 이 불면을 꺼줘요, 아무리 소리 질러도 대답 없는 새벽 2시의 속삭임. 후 불면 꺼질 것 같은 밤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백주의 세계. 결국 벽에 걸린 소화기를 들어 안전핀을 뽑는다. 생각을 등지고 서서 불면을 진화한다. 알아듣지 못한 밤의 말들이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타고 남은 재가 되고 나서야 기억할 수 있는 영혼도 있구나. 다 쓴 소화기를 들고서 있는 마음처럼 아닌 한밤중에 다시 중얼거린다. 한번 사용한 소화기는 어떻게 처리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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