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 1통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by 글마음조각가

일이 막힐 때마다 '어디 보자~'라며 습관적으로 말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용한 무당도 아니고, 오히려 독실한 크리스천에 가깝다. 그런 그가 주판을 튕기듯 손가락을 접었다 펴고, 엄지와 검지 사이 혹은 장지와 약지 사이를 숨 가쁘게 오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묘한 위로를 받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어릴 적 주산학원을 참 열심히도 다녔더란다. 234원이요. 546원이요. 아직도 주판알의 느낌이 손끝에 생생하단다. 이후로 그는 마음 막막할 때마다 '어디 보자~'하며 무당처럼 손가락을 접었다가 펴곤 한단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꼬인 생각이 술술 풀리더란다.


어제는 홀로 길을 걷다가 이목구비를 감춘 내 그림자를 무심코 바라보았다. 주산과 암산으로도 쉽게 기억나지 않는 주판알 같은 내 얼굴. 그림자가 많은 곳에 서 있으니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 줄 셈할 수가 없다. 세상을 다 얻은 왕일지라도 작은 벌레 한 마리에 화들짝 놀라듯, 오늘의 약육강식은 무효다.


그림자의 모습으로 거리에 핀 이팝꽃을 본다. 꽃 한술 향기 한 입 내 배에 채울 수 없으니, 모든 그림자가 변죽을 울린다. 오랜 궁리 끝에, '어디 보자~'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넣는다. 신호가 울리는 동안 분별(分別)과 배려(配慮)가 같은 의미임을 깨닫는다. 부재중 전화 1통이 내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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