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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May 17. 2022

나와 나 사이에 띄어쓰기를 두는 수밖에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그림자 위에 나를 놓는다. 나는 그림자를 뿌리 삼아 피어나는 꽃. 모호한 형태의 이름 없는 꽃. 어두운 향기에 기대어 피고 지는 꽃. 나는 그림자와 마음을 나눠 쓰는 관계지만, 계란처럼 톡 깨면 흰자와 노른자로 금세 구분되는 사이. 내 하루는 이복형제 같아서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어렵고, 그래서 조금은 더 애틋하고. 그게 전부라면 전부인 나는 요즘 '즈음'에 묶여 산다. 일이 어찌 될 무렵처럼 명확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내 오후는 다시 머뭇거릴 힘을 얻고, 그동안 뭉뚱그려가며 꽃이라 부른 것들은 도리어 섬세한 시간을 쪼개어 저녁을 완성시킨다.


저녁이 되면 꼬리부터 사라지는 것들. 사라진 것들은 각자의 이름을 향해 진화해간다. 그 과정은 창조와 같아서 이번 생에서는 부디 견딜만한 저녁의 환상통을 부른다. 오늘 저녁도 마찬가지로 촌각을 다투어 가며 뿌리째 썩어가는 그림자의 저녁을 본다. 마음을 시침에 두고 몸이 기우는 곳에 분침을 두고 사는 일이 늘 절박에 가깝다. 할 수 없지, 좀 더 슬픈 쪽에 마음을 열어두는 수밖에. 모든 절박이 사랑이 될 때까지, 오늘의 날씨가 내일 저녁의 다짐이 될 때까지. 촌각을 다투어가며 나와 나 사이에 띄어쓰기를 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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