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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Oct 04. 2020

어텀 블루스는 나의 선택

내 인생 검색과 추천 기능

가을은 슬픈 계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낮 시간이 짧아졌고 거리에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니 계절이 바뀜을 알겠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느낀다. SAD, 계절성 정서 장애(우울증)이라고 불린다. 단조의 쓸쓸한 음악을 괜스레 재생해본다. 


추위가 찾아오면서 다시금 지난 수개월간의 시간이 개인적으로, 또 국가적으로도 많은 갈등과 사건으로 점 칠 된 시간이었음을 인지한다. 긴 호흡 없이 그저 무언가를 벗어나 보고자, 얼굴 뒤편의 슬픔을 극복하려 애를 써왔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상실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 야속하다. 이 끝없는 그리움은 계속해서 나와 함께할 것이다.


이렇게 추운 계절이 찾아오며 드는 감정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은 차분해지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우주에서 나의 위치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중 삼 일을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TV 볼 일이 많았다. 아빠에겐 우리 아들들이 내려오길 바라시는 이유가 몇 가지 있을 텐데 그중 하나는 우리와 함께 밤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소화할 겸 소파에 늘어져 있으면 아빠는 슬그머니 "영화 하나 찾아봐라"라고 하신다.


방대한 검색 결과들 앞에서 우리는 약해진다. 아들들이 선호하는 영화 스타일과 아빠의 취향을 혼합해 최적의 영화를 검색해 선택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이미 거의 다 본 것들이다. 검색에 지친 우리는 넷플릭스에게 한 발 양보해 추천해준 영화들 중 한 개로 타협한다.


검색과 추천은 도구일 뿐일까?


검색과 추천은 동전의 양면의 성격을 지녔다. 검색과 추천은 서로 보완하기도 하고 서로를 대체하기도 한다. 또 무엇이 먼저 오든 순서로 우위를 가릴 수 없다. 왜냐하면 검색과 추천 기능은 목적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종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한 도구이다.


검색을 하는 행위에는 추진 동력이 행위자 내부에 있다. 검색을 시작하는 시점, 검색을 해 도달하고자 하는 어렴풋한 목표 지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개개인별로 검색 행위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벡터(vector)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색은 좁고 제한적이다. 내가 아는 만큼까지만 검색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추천 기능은 제한이 없다. 유저 입정에서 추천은 외부에서 우리에게 작용하는 힘이다. 검색은 우리가 멈출 수 있지만 추천은 보통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추천에는 관성의 역학이 적용된다. 그래서 추천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유저는 취약점이 노출될 수 있다. 검색으로 가동된 추천 기능은 계속해서 우리 앞에 방대한 선택지를 들이민다. 적절한 반작용을 하지 않으면 이 추천 알고리즘은 우릴 끊김 없이 표류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우리의 삶에서 많은 선택을 추천 기능이 대신할 것이다. 이제 검색 엔진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추천 엔진이라는 말이 시대 방향에 더 적확할 것이다. 똑같은 단어를 검색해도 검색 주체마다 다른 결과를 보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미 추천 기계에 대부분의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추천 알고리즘의 로직은 매우 복잡한 수학으로 되어있지만 이 로직의 정수는 조건부 확률이다. 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다. 내가 넷플릭스에서 덴젤 워싱턴을 검색했을 때, 과거에 본 덴젤 워싱턴 영화들 중 내가 좋아할 확률이 높은 작품들을 추천하는 식이다. 넷플릭스가 가진 영화의 수가 매우 많고 유저마다 취향과 성향이 다르기에 경우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개수보다 많다. 이 경우의 수들을 통해 더 정확하게 예측해내는 수학 모형이 더 좋은 추천 알고리즘이 된다.


추천 기능은 사람들의 입력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그래야 높은 수준의 개인 추천이 가능해진다. 개인 추천이 정확해지면 우린 점점 추천 결과를 신뢰하게 되며 더 나아가 우리의 검색 의도와 추천 결과를 혼동하게 될 수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모형은 우리에게 탐색 행위 자체도 매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예전 어른들은 TV를 보고 바보상자라 불렀다. 네모난 화면을 가만히 보고만 있으니 바보같이 된다는 뜻이었겠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보다 강력한 네모난 화면이 우리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 사람들은 깊은 생각 없이 뭐든지 다 좋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바보라 한다. 추천 기능은 우리가 다 좋아할 만한 것들을 제안한다. 이는 자칫하면 인간의 강력한 생존 무기였던 비판적 사고를 어렵게 한다. 머리에 든 지식만 많지 내 의지대로 선택을 내릴 수 없는 바보가 될 수 있다.


이제는 해가 지면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깜깜해진다. 여기에 찬 바람까지 불면 거리에서 낭만을 찾기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추천 기능은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추천 기능은 우리가 가진 취향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배움의 능력과 시도할 용기를 제한하기도 한다. 우리 앞에게 주어진 선택지와 기회가 어떤 방식으로 내 앞에 주어졌는지 의식적으로 그 과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 결정이 온전히 내가 내린 것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Aaron Hermes, Kyle Glenn & Daniele Bu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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