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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un 10. 2021

인셉션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였다

결핍이 낳는 삶의 방법들

11년 된 영화라 이미 대부분 보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조금의 스포가 있어요.




꿈속에 또 다른 꿈이 있고, 꿈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림보(limbo)와 같은 복잡한 설정과 플롯으로 우리로 하여금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만든 영화였다. 당시엔 그렇게 높은 차원의 영화로만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문득, 영화가 처음 나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 이 영화가 지독한 사랑과 결핍에 관한 영화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디카프리오의 죽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 킬리언 머피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그의 인정 결핍이 절묘하게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연결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이 두 명의 캐릭터가 지나간 사랑에 무심하거나, 혹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다.


타인의 꿈속에 잠입해 그것을 조작한다는 컨셉을 생각해보면, 타인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진정한 결핍이 무엇인지 알아내겠다는 목적이다. 디카프리오와 머피 모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충족하기 원하는 결핍이 있었고 이것이 과감한 결단과 행동의 동기로 작용했다. 사람들마다 기저에 깔린 무의식적인 믿음과 결핍은 현실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쉽게 변하지 않는 단단한 근거가 된다.


이런 결핍을 이용한 행동 변화는 결국 무의식을 건드려야만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내린 생각은 결국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이다. 팽이를 돌려 현실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디카프리오나, 현실이 아닌 꿈속의 죽어가는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확인한 머피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믿느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나의 결핍을 해소해줄, 나만 아는 외로운 아픔을 경감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행동의 이유가 된다. 다만 이를 남에게 쉬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서로의 행동과 결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이때는 시간만이 답이 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디카프리오의 멈추지 않는 팽이는 결국 결정된 답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현실과 과거 모두 지금의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그려내는지가 나름대로의 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지나간 사랑도, 지속되는 결핍도 지금의 내가 정의하기 나름인 것 같다. 다만 그것들은 우리의 성향과 삶의 목표와 깊게 연루되어 있어 쉽게 무시할 수도, 떨쳐낼 수도 없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예민하던 나였지만 성인이 되어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머리만 뉘이면 거의 바로 잠이 드는 편이 되었다. 그런 내가 요새 꿈을 자주 꾼다. 특히 같은 사람이 나오거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 아침에 일어날 때 기묘하다. 며칠 전 아빠가 렌즈삽입술을 받으러 엄마와 함께 서울에 올라오셨다. 하루에 눈 한쪽씩 진행하는 수술이라 3일간 서울에 체류하다 내려가셨다. 안약 넣을 시간이 되었다거나 길 앞에 턱이 있을 때마다 아빠를 세심히 챙기는 엄마의 얼굴을 유심히 본 시간이었다. 이것은 지금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파트너의 안정을 바라고 돌보는 것은 지금의 깊은 사랑이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희생이다.


출퇴근길에 논현역 교보타워를 지날 때마다 글귀들을 본다. 그중 내 마음을 잡은 글귀가 있다.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전봉건 시인의 시, <사랑> 중 일부다. 시인이 말한 사랑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한 것이지만, 처음 저 글귀만 본 나는 나의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의 내가 가진 죄책감은 지금의 내가 사랑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지금의 내가 느끼는 결핍은 앞으로의 내가 살아갈(또 사랑할) 방법을 형성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essay by junwoo

photo by Juan Davila & The Blow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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