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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Oct 23. 2021

퇴사하는 시대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부모님과의 저녁 자리에서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 비전은 어떻니, 상사는 어떻니 등 익숙한 질문들이다. 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이직을 계획하는 모습이 두 분의 눈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분들 시절에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을 알아본다는 건 어찌 보면 루저(Loser)나 부적응자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삼저 호황 시대라는 끝내주는 경제 상황에 힘 입어 내 집 마련과 정년이 보장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굳이 왜? 그냥 다녀~ 회사가 거기서 거기지.”


미국의 퇴직 러시, The Great Resignation


미국에서는 8월에만 430만 명이 퇴직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하다. 미 노동청에 의하면 이 430만 명은 미국 전체 근로자의 3%에 달하는 숫자다. 8월에만 미국 전체 노동자의 3%가 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이다. 퇴사자가 많은 산업 분야는 음식점, 주점, 그리고 호텔업이 가장 많았고(892,000 명), 그 뒤를 이어 리테일 산업에서 721,000 명, 그리고 전문직에서 706,000 명, 534,000 명이 헬스케어 산업이었다. 주로 감염 노출에 취약한 대면 근로자(essential workers)들이 대다수다. 반면에 법률, 공학, 건축 등 재택근무 전환에 용이한 산업 종사자들의 경우엔 퇴사율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난 4월에도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일을 그만뒀는데, 이는 2000년 12월 퇴직률을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로 최고의 퇴직률이라고 한다. 이 퇴직 러시(rush)의 여파로 지금은 전 세계 물류와 공급망이 거의 마비 수준이다. 배에 실은 컨테이너를 내릴 사람이 없고 기름은 있는데 주유소로 나를 사람이 안 구해지는 실정이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각국의 정부는 양적완화를 통해 경제 부양책을 내놓았다. 계속해서 시장에 돈을 풀고 있는데, 이때 경제회복 신호로 보는 지표가 물가상승률과 고용률이다. 작년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다시 구직을 시작하는 모습을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역대급 퇴직률과 구인난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작년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3월과 4월에만 미국 약 20천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하루에 약 백만 명씩 해고 통보를 받은 거다. 쉽게 뽑고 쉽게 자를 수 있는 하급 직원들, 즉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일과 삶이 새로 정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을 일자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생각의 판을 다시 짜야할 때다.


배경


이들이 아무 믿는 구석도 없이 사표를 썼을 리 없다. 미국의 기록적인 퇴사자 수는 지금의 직장을 그만둬도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노동자들의 노동 시장의 기대감과 자신감을 반영한다. 현재의 소득과 근무 환경에 타협하기보다 특정 산업으로 옮기거나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라는 반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퇴직 러시의 이유를 3가지로 압축해보았다.


1. 낮은 보수와 업무 환경에 대한 불만

이렇게 빡센 상황에서 겨우 이거 받으라고? 낮은 보수. 이렇게 일했는데 고작 이걸 받으니 현타가 온 것. 더럽거나 위험한 근무 환경, 그리고 긴 업무 시간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퇴사를 결정한 것이다.


2. 기존 업무에 대한 번아웃과 건강상의 이유

기반 근로자들은 바이러스와 싸우랴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정부 지침 비협조자들과 싸우느라 많이 지쳤다. 사무직군도 일과 삶의 모호한 경계에서 재택근무하는 시간이 오히려 늘기도 하였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시니어 레벨의 근로자들은 지금 몇 년 더 버는 것과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건강상 리스크를 고민했을 때 남은 시간을 조금 더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기로 결정한 비중도 높다.


3. 근무 방식에 대한 더 높은 유연성 요구

재택근무는 일하는 곳만 사무실에서 집으로 바뀐 것이 아니었다. 생산성을 침해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유연한 근무 환경을 원하기 시작했다. 링크드인 자체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다시 사무실 근무를 시행한다면 퇴사를 하겠다는 응답률이 60%가 훌쩍 넘는다. 내 일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조직이 그 권한을 다시 앗아간다는 느낌은 조직 충성심을 크게 갉아먹는다.


포스트 코로나,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


미국의 퇴직 러시를 유심히 보아야 하는 이유는 전반적인 노동 시장에서 자발적 퇴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자문자답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삶의 궤적에서 나는 어느 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지 말이다. 분명히 코로나는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과 일에 대한 생각을 바꿔버렸다(코로나가 바꾼  일터​). 내가  담은  조직이 위기 상황을 해쳐나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감염 위험이 훨씬 높은 출퇴근길 지옥철과 지옥 버스를 견디면서도 조직의 성장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고, 서로를 응원하며 조직을 지키고자 눈물 나게 노력했다.  회사가 뭐라고.


주니어 레벨 사이에서 커리어 개발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부트캠프 등을 통해 빠르게 개발자로 커리어 피봇팅을 하는 등, 조직이 기회를 주기 전에 먼저 전문성을 찾아가고 있다. 조직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자발적 피드백이 더욱 중요하며, 알량한 복지를 늘리는 것보다 이러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강력한 유인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가는 사람 못 잡고 새로 뽑고의 악순환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미국과 조금 다른 양상이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기업 간 우수 인재 모시기 전쟁이 과열되고 있다. 잘하는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서 선택된다. 하지만 나는 미국의 퇴사 러시의 여파가 태평양을 건너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취업난이 계속되리라는 예측은 없다.


요즘 우리들의 안부 인사는 “지금은 어디 다니세요?”다. 링크드인에 있는 사람들 중 8할은 최소 1회 이직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다. 우리는 철새일까 노마드일까, 우린 이미 많이 알아버렸다. 이 회사라는 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고 그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나를 위한 기회들이 있다는 것. 내가 무엇을 해야 더 행복할지 알고 있다는 점.


다시 부모님과의 저녁 자리로 돌아온다.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 좋은 설명 방법이 떠올랐다.


“그냥요, 제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이에요.”



essay by 이준우

photo by Jose Martin Ramirez Carra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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