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b n Wrestle Nov 14. 2021

당신은 누구 편?

세일즈맨의 역할

오빠는 누구 편이야?


지지난주 여자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 얘기가 나왔다. 요즘 일은 어떤지, 뭐가 어떠니 저쩌니, 누가 뭘 했느니, 안 했느니, 이런 평범한 얘기들이다. 여기까진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여자 친구의 일터에서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것을 듣다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여자 친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내가 그 분야의 권위자라도 된 것 마냥 그분의 행동을 분석한 후 내 나름의 냉철한 평가와 개선점을 제시하고 말았다. 아차! 때는 늦었고 그분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그 잘못이 무엇이건 간에 남자 친구인 나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얘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는 것이 그 날의 교훈이다. 나는 솔로몬 왕이 아니니까.


남편은 ‘남의 편’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배경을 생각해보았다. 내 편이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모습이 정 떨어지고 밉상이기 때문이겠다. 남자들은 애인의 고민에 대해 객관적인 상황 판단과 원인 분석을 해주는 게 애정 표현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많은 경우 상대방은 그냥 ‘맞아 맞아’ 맞장구 쳐주고 함께 욕해주기를 바란 것뿐이다. 내 경험상 이걸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어렵다. 수학의 정석 답안지처럼 그냥 암기하는 게 몸과 마음이 편하다.


세일즈맨은 누구 편일까?


지난 몇 개월 전부터 기업들의 인사 총무팀이나 조직 문화 디자인팀 실무진들을 만나는 게 내 일이다. 그 기업이 날 찾아온 이유와 고민들을 들은 후에 맞춤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상품은 시장에서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다. 공급보다 수요가 더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신규 고객 확보와 상품 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담당자분들에게 말씀드리며, 우리가 함께 맞춤 해결 상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는 기업용 상품을 파는 세일즈맨인 동시에 상품의 고도화 작업에 관여하는 PM(Product Manager) 역할도 하고 있다. 나의 최우선 목표는 많은 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직 상품 자체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상품에 대한 이용자 피드백도 유관부서에 전달하고 있다. 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사람인만큼 이 또한 나의 책임이라고 본다. 상품 기획과 개발을 담당하는 팀원들이 고객을 계속 염두에 둘 수 있도록 확성기 역할을 한다.


기업 영업 특성상 고객사 특수 요구 사항들이 생기는데, 내 역할은 내 선에서 푸시 백(Push-back)할 건 하면서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항들은 팀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 과정부터 나는 고객의 대리인이 된다.


상품의 가치 제안 이후에는 고객 편에 서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고객의 사정과 니즈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가장 크고 분명하게 팀 내에 공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변하는 주체를 명확히 해야 메시지에 일관성이 생기고 내용에 모호함이 생길 확률을 낮춘다. 특히 고객사가 쟁쟁한 경쟁사들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한 가지만 잘 못 이해하고 내부 소통을 해도 고객을 잃을 수 있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팔아도 욕먹고 안 팔아도 욕먹는다는 말은 꼬리표처럼 세일즈 담당자들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세일즈맨은 이름값을 해야 한다. 팔아야 산다. 파는 게 안 파는 것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익이다. 그렇기 때문에 팔기로 했다면 확실하게 고객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 고객사 편에 서는 것이 내가 몸담은 회사를 위한 행동인 것이다.


고객사 담당자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내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나는 그분들이 근거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돕는다. 내가 그분들의 같은 편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얻을  있고, 그래야  많은 정보를 얻을  있고, 그래야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의 맞춤 솔루션을 제공할  있게 된다.  과정이 물론 순탄치가 않다. 고객과 우리  양쪽에서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세일맨은 이렇게 양쪽 편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세일즈맨의 공감 능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Daniels Joffe

작가의 이전글 감칠맛나게 설명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