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77]
“문제가 많아요”. 그 팀장을 설명하는 첫 마디가 그랬다. 부서에서 팀장과 팀원 사이의 갈등이 생기자 부서장과 인사담당 부서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원하는 데로 되지 않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의가 왔다. 직감적으로 조직에서 인사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면 안 될 것 같아 객관적인 진단부터 하자고 요청했다. 리더로서의 역량 진단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리더로서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향상시켜야 하는지 물었다. 여러 사람의 의견 중에 인상적인 부분은 이렇다.
“공감 능력이 떨어져 부하직원이 왜 힘들어하는지 몰라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요. 꼭 남 탓을 해요.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일을 할 때 공과 사의 구분이 안될 때가 많아요. 자신의 감정 조절을 못해요. 부서원들을 존중하는 마인드가 없어요.”
진단 결과는 이렇지만 대상자를 도와야 하는 사람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으로 한발 떨어져서 상황을 보기를 원했다. 둘이 마주한 회의실에서 리더 역량에 대한 진단 결과를 설명하고, 구성원들의 피드백도 하나씩 살펴보았다. 진단 결과를 설명하기 전에 충격을 받을 수 있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설명했지만, 결과를 보고 나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장과 지금 이 상황이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저는 억울해요. 얼마 전에 팀원과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장점을 보려 하지 않고 단점만 적어놓은 거예요. 일부 인정할 부분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나름대로 상사를 위해서 했던 행동도 있고, 조직에서 일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예요. 저는 그렇게 배웠고 배운 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읽어보니 누가 이렇게 썼는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입장마다 사건이나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똑같은 컵을 보더라도 바깥에서 보는 모습과 안에서 보는 모습이 다른 것처럼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위, 아래 다양한 관점에서 본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진단 결과를 받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성적표의 관점이다. 그동안 어떤 노력을 들였는지, 조직에서 부여한 역할에 대해서 얼마나 잘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진단의 경우 명확하게 숫자로 나오니 이런 부분이 두드러진다. 이런 경우 현 상황이 어떤지 살펴볼 수는 있지만 진단이 모든 것의 결론, 마무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하나는 검사지의 관점이다. 마치 엑스레이처럼 어디를 다쳤는지,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복합골절처럼 여러 군데의 문제가 있는 경우 어디부터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단 보다 치료다. 문제를 찾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친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기브스하는 것처럼 진단 다음의 행동이 중요하다.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날카로운 시선은 상처가 될 수 있으므로. 그리고 마음속의 고름을 다 들어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한 번의 대화로는 모자랄 것 같아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적어보기로 했다. 분명하게 덜어내고 버릴 수 있도록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을 이메일로 적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도 그러기로 했다. 예정했던 한 시간의 미팅은 두 시간 반이 넘어 끝났다.
사실 프로젝트를 들어가기 전에 그의 상사와 인사 책임자에게 물었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그들은 그의 변화를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명확한 기대치를 요구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고 사람이 단기간에 변할 수 있는 정도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들과 합의한 프로젝트의 목표는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고, 부서장과 합의하는 세 가지 이하의 역량에 대해 가시적인 행동 변화를 보이면 만족한다고 했다.
그를 만난 지 2주가 지났다. 아직까지 메일은 오지 않았다. 이번 주 초에 리마인드 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은 없다. 또다시 재촉하기보다는 다음 만남까지 기다려볼 생각이다. 하지만 조금 안타깝다. 그에게 지금 요구하는 것은 모든 행동의 변화가 아니다.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출발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다.
[이형준의 모티브 77] 문제보다 중요한 건 변화의 의지야
직장인의 성공을 위한 팟케스트 <3040 직딩톡>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