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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준 Aug 24. 2019

계절의 끝자락에서

[이형준의 모티브 86]


더운 여름의 끝자락


매미들은 울어대고


느릿느릿 읽던 책 한 권 베고서


스르르 잠든다


내가 찾아간 그곳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아침이면 까마득히 다 잊혀질


아득히 먼 그곳


가물가물 일렁이는


누구일까 애타게 떠올려 봐도


무엇을 찾고 있는지


코끝이 시리다




홀로 걷고 있는 이 길


어제처럼 선명한데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릴 누군가


마음이 급하다


라라라라 읊조리면


어느샌가 겹쳐진 낯익은 노래


그 순간 눈은 떠지고


바람만 흐른다


또 꿈이었나 멍하니 기지개를 켜다가 


젖어 있는 내 두 눈을 비빈다





© KIMDONGRYUL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동률이 발표한 '여름의 끝자락'이라는 노래다. 굵고 따듯한 그의 목소리, 차분한듯 단정한 피아노,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는 노랫말. 특히 ‘끝자락’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혀 자꾸 되뇌이게 된다. 끝자락.




그의 노래를 모두 함께한 친구인 동생들을 만났다. 청춘을 함께 한 우리가 모여서 제일 먼저 한 이야기는 안경을 닦으며 눈이 침침하고 잘 안보인다는 거였다. 노안이 와서 다초점렌즈로 안경을 맞췄다는 막내.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을거냐고 묻는 나보다 더 희끗한 머리의 동생. 그때와 똑같은 옷.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요즘 맛있다는 맛집에서 저녁약속을 잡고 그때처럼 만나기만 하면 즐겁고 시끄럽지만 왠지 요즘은 청춘의 끝자락에 와 있는듯 하다.




언니나 누나가 아니라 이모라 불림에 당황해하고, 오빠나 형님 보다 사장님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돌리며 어색해 한다. 20대 때에는 30대 누나들이 결혼을 안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했고, 40대는 아저씨로 보였고, 50대 이상은 보이지도 않았다면, 이제는 나 자신이 그 나이에 가까이 왔다.




보이지도 않던 그 나이에 와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젊은 시절이 그려진다. 그전에는 인식하지도 못했다. 젊었던 내 어머니가 할머니가 되고, 정정했던 장인 어른이 할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팽팽하고 단단했던 시절이 겹쳐보이는 것이다. 결국 나도, 우리도 저 길을 걸어 가겠지..





© Gettyimages



여름의 끝자락이다. 청춘이 뜨거웠던 여름이라면 장년은 과실을 따는 가을 아닐까? 그렇다면 원하는 시기에 풍요로운 결실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풍성한 가을을 맞으려면 씨를 많이 뿌려야 한다. 봄에 씨를 뿌려 놓지 않으면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도 걷어들일 것은 없다. 해보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의 위대함이 그것을 키워준다. 얻고 싶은 것을 심어야 한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고, 파를 심으면 파가 나온다. 실제 해보니 그렇다. 말만 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얻고 싶은게 있으면 씨든 모종이든 사업이든 심어야 나온다.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고, 햇볕을 받게 해주고, 필요하면 영양제도 넣어줘야 한다. 작은 나무도 매일 같이 먼지를 닦아주고, 인사말도 해주고 예뻐해 줄수록 잘 자라듯이, 모든 것이 그렇다. 자신이 하는 일이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어진다. 그 일을 하는 시간이 즐겁고, 그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어려운 일도 다르게 느껴진다. 일이 재미있어 진다. 그렇게 진심을 담으면 성장한다. 그 노력을 들이는 시간들이 행복해진다.




기대했던 결과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딱 맞춰 열리지 않는다. 열매가 기대와 다르게 나오지 않더라도 포기하기엔 이르다. 열매가 나올 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한다. 뭐든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결과물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다.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이 쉽지는 않다. 때를 아는 경험많은 농부라면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누구나 처음사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힘든 것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살아가야 하니까.




© Pixabay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심어 놓은게 없다면 걱정이 더욱 클 것이다. 그때는 가을에 맞는 작물을 심자. 봄에 벼를 심는다면 가을이면 보리를 심으면 된다. 세상에는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또 하면 하는데로 심으면 심은데로 되돌려 주는 것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다.




준비하고 살아도 태풍이 와서 다 쓰러트려 버릴수도 있다. 준비도 덜 되었는데 추운 바람이 몰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가을이 오면 그 시간을 즐기자. 주어진 것이 원하는 것보다 적더라도 그 시간을 뜨겁게 살아왔다면 그 과실을 즐기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언젠가 가을도 지나 추운 겨울이 오겠지. 삭풍에 힘들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것도 끝은 아닐 것이다. 다시 볼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에서는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언제나 끝자락은 시작과 맞닿아 있으니까.




© Gettyimages











[이형준의 모티브 86] 계절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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