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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Oct 06. 2017

세상 그 누구보다 굳건한 지지자. 어머니.

어머니는 위대하다.

남자는 부천에 있는 본가에서 추석을 삼 일 내리 쉬었다. 이튿 날 까지 잘 쉬고, 삼일 째가 되어 다시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이튿날 저녁, 남자는 괜히 거실에서 어머니 곁을 서성거렸다. 아버지와는 사이가 안좋기에 어머니 곁에서 왔다갔다 하며 타이밍을 엿보던 남자는 무심한듯 한 마디를 던졌다.

"어머니."

"응?"

어머니가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눈동자가 남자 쪽을 향하지 않아, 남자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필 수가 없었다. 

....다시 무심한 듯 해보자.

"음..제가 월급날이 25일인데...그때 까지 돈이 조금 필요 할 것 같아서.."

어머니가 남자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남자는 괜히 눈길을 아래로 깔았다. 나이 서른이 되어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는 소리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도 한 때 자신의 미래가 창창할 줄 알았다.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탈고 했을 때, 음. 엄청난 대작은 아니어도 그래도 이 만하면 수입이 생길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하. 서점에 책이 깔리면 꼭 어머니에게 자랑해야지.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인세로 받은 돈으로 어머니에게 맛있는 것을 사드려야지. 하는 계획까지 세워저 있었기에, 실망이 앞섰고 어머니에게 죄송했다.

그림을 그렸을 때도 같은 희망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도 그림을 좋아해주고, 미술대회에서 상까지 받았으니 이제 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얼마면 되니? 20만원 정도면 되겠니?"

어머니의 눈빛은 기뻐보였다. 그렇기에 남자는 죄송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도 잘하고 싶었다. 한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것으로 돈을 벌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남자가 그림과 글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기에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비록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인생을 보냈다. 글과 그림을 배우며 일을 병행한 탓에 남들 만큼 월급을 번 적이 없었고, 그 많지 않은 월급조차도 20대 중반에 그렇게 몇 년동안 인생을 보낸 것은 냉철한 사회의 시각으로 보자면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자에게 한 번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남자가 소설을 시작 할 때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괜찮겠니. 라고 한 마디 하신게 전부였고, 그림을 배울 때는 기뻐하셨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그렇다면 삼일 째 되는날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돈을 주겠다고 하시고, 다시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괴로움이 동시에 솟아났다.


남자는 삼일 째 되는날 어머니의 카톡을 받았다. 거실에 걸려있던 남자의 겉옷에 20만원을 넣어두었다는 말과 함께 '힘내 아들'이라는 추신이 붙어 있었다. 남자는 '감사합니다 어머니'라고 답장을 보내고 20만원을 챙겨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남자는 직장에 신고 다닐만한 운동화가 하나 밖에 없었기에 운동화를 하나 사고, 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초밥을 먹었다. 벨트가 낡았기에 하나 구입했고, 양말이 없었기에 양말을 여덟 켤레 샀다. 생각해보니 담배값도 들것 같아 길가에 있는 한 갑에 2500원짜리 수제 담배를 약 두보루 구입했다.

순식간에 12만원이 없어졌다. 남은 돈은 8만원. 이제 남은 8만원으로 25일 까지(현재 남자가 글을 쓰는 시간은 5일 자정이다) 20일동안 8만원으로 버텨야 하는 샘이 되었다.


담배값이 일단 고정이 되었으니, 8만원은 아마 대부분 식비로 나갈 것이었다. 


버텨내야한다. 물론 어머니에게 요청을 하면 어느정도 돈을 주시기야 하겠지만, 남자는 그 돈이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서 힘겹게 일하시며 버는 돈임을 알고 있었기에,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더 이상 어머니에게 돈을 받기는 싫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정말로 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좋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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