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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Oct 30. 2017

일상 - 2017년 10월 30일

성인 남자가 어린 남학생들을 다루는(?)법

위잉-. 위잉-. 청소기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마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보아 복도에 누군가가 청소기를 돌리는 것 같았다. 관리인분인가. 아니면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잠시 궁금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궁금함이 형체를 갖추기 전에 청소기 소리는 멈췄고 곧 궁금함의 형태도 공기속으로 사라졌다.


잠이 깨자 오늘 아침 야근을 끝내고 먹었던 짬뽕이 떠올랐다. 그집 짬뽕 맛있었지. 짬뽕 두 그릇과 미니 탕수육, 소주 한 병으로 이루어진 직장 형님과의 자그마한 술자리는 즐거웠다. 퇴근의 기쁨과 맛있는 음식,가벼운 술. 이런 즐거움으로 회사를 버티고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쩝. 오늘도 거기를 가볼까. 남자는 충전기에 꼽혀있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오후 5시 50분. 애매한 시간이었다.

일단 담배를 피우고 생각해보자. 남자는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몇 모금 마시고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통-. 펑. 밖으로 나가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 교회 앞마당에서 다섯명 남짓한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축구. 나도 좋아 하는데.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학생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둘은 그나마 기교라는 것이 조금은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나머지는 공을 따라 뛰는 강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지. 공을 뺏을 때는 상대가 뭘 할지를 미리 예상해보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야지. 그렇게 한 번에 훅 들어가면 오히려 제껴지기가 더 쉽다고.

남자가 혼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사이에 교회안에서 익숙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관리인 분이었다.

관리인 분은 학생들에게 다가가 교회 벽에 붙어있는 '야구 금지. 축구 금지' 라고 써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다른 곳에 가서 축구를 하라고 타일렀지만, 학생들은 들은채 만채였다. 리더 격을 맡고 있어 보이는 덩치가 큰 학생은 관리인 분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다.

주위를 두리번 관리인분과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아. 귀찮아졌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앞으로의 상황이 귀찮아질 것을 느꼈다.
남자는 피우던 담배를 물고 학생들 쪽으로 다가갔다.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고.


야. 니들 다른데 가서 축구해.


학생들의 반응이 있었다. 리더가 다른 학생들에게 내뱉었다. 야. 다른데 가서 축구하래.

그런데 학생들의 '다른데'는 약 오 미터 앞이었나 보다. 학생들은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또 거기서 공을 차기 시작했다. 관리인분은 그 모습을 보더니 남자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저었다. 아마. 교섭 실패의 몸짓 같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씻고 집을 나섰다. 학생들은 아직도 공을 차고 있었다. 음. 저 개새끼들이. 남자는 나지막히 욕을 내뱉었다.

교회의 안전과 소음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남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금씩 꿈틀거리는 감정을 흐트리며 어떻게 하면 저녀석들을 여기서 떠나게 할 수 있을까. 방법을 궁리하다가, 리더를 불렀다.


야.


리더는 남자를 바라볼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축구 좋아하냐?

....


여전히 묵묵무답이다. 그러나 남자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긴 했기에,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형이랑 공 좀 차자. 2분 안에 니들이 이 앞마당에서 내 공 뺏으면 암 말 안할께. 대신 못 뺏으면 다른 데 가서 차. 오키?


마지막의 오키?가 웃겼는지, 몇 몇이 풉. 하고 웃었지만 남자의 제의를 받아 들일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뭐. 그럴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야겠구먼.

남자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다른 아이가 리더에게 올린 짧은 크로스를 가로챘다.


그 즉시, 학생들이 남자에게 다가들었다.


남자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소위 학창시절에 '날리던' 축구 신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태권도를 오래했고 군대에서 축구에 재미가 들린 후에는 사회에서 틈이 날 때마다 축구를 했다.

일단 공을 지키기 위해 학생들을 등을 졌다. 남자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학생들이 남자의 다리 사이로 다리를 넣어 공을 빼려고 했으나 다리 길이가 턱도 없이 짧아 닿지 않았고, 그 중 나름 재치 있는 녀석이 왼쪽으로 돌아와 옆으로 다리를 넣었으나 남자는 여유롭게 오른쪽으로 공을 드리블해 빠져나와 반대쪽으로 공을 몰았다. 그러자 세 명이 우그르르 달려왔다.

만약 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면 조금 위험 할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 뒤에서 두 명이 붙었고 왼쪽을 파고들었던 아이는 오른발만 고집을 하는지 또 왼쪽으로 파고 들었다.

다시 공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드리블. 두 학생이 뒤에서 남자를 힘으로 밀어보려도 했으나 허리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툭 밀자 오히려 학생들이 튕겨나갔다.


음화하. 어떠냐. 짜식들아. 이게 어른인 것이다. 남자는 썩소를 지으며 몸을 반대로 돌리고 이번엔 돌진에 나섰다.

처음은 흔히들 말하는 툭.툭.타.로 나섰다. 공을 짧게 두 번 치고, 세 번째는 조금 강하게 차 상대에게 혼란을 주는 동시에 빠르게 치고 나가는 패턴이었다.

강아지 같은 두 학생(이하 강아지)들은 열심히 남자를 따라다녔지만 공쪽으로는 발을 뻗지도 못했다.

이번엔 나머지 두 명이 달라 붙었다. 흘긋 상황을 보니 리더는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속 빈 강정이구먼.

두 명도 어렵지 않았다. 약간의 발재주를 부리자 두 명도 쉽게 발놀림에 홀려 발을 뻗었고, 먼저 발을 뻗는 수비수는 쉬운 먹잇감이었다.


2분이 지나고 남자는 공을 손으로 잡아 들어올렸다.


자. 너희도 남자니까 약속은 어기지 않겠지. 딴 데 가서 놀아.


리더가 뒤에서 침을 퉤 뱉더니, 야. 가자  하고 발길을 옮기자 나머지 학생들이 남자에게 공을 받아들고 리더를 따라갔다.


잠시 후에, 관리인 분이 교회에서 나오더니 남자를 보고 엄지를 세웠고,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고 담배 하나를 물고 불을 붙이며 출근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생각했다.
남자믄 대단한 축구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당장 사회인 축구만 뛰어도 이정도로 수비수를 제끼기는 힘들 것이다) 현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중간이 잠시 감정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지만 나름 좋은 방향으로 이 일을 해결하지 않았나. 하고 자축했다.


출근 버스를 타기 잠시 전, 시간이 남아 정류장 앞에 있는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이것이  공장 생산직에서 일하는 평범한 남자의 평범한,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2017년 10월 30일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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