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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Dec 17. 2017

일상 - 2017.12.16

할 일이 없는 회사

일은 여전히 없었다. 12시간의 근무시간동안에 제대로 근무를 하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남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몰래 몰래 핸드폰을 하거나(물론 경력이나 직위가 꽤 되는 사람들은 대놓고 했다), 심심풀이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사무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교육용 책자를 집어들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는 몰래 하는 것을 매우 못하는 성격이었고, 핸드폰으로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교육용 책자를 뒤적였다.

교육용 책자는 꽤나 흥미로웠다. 그동안 남자의 부족했던 업무용 지식의 빈틈에 쏙쏙 들어박힐만한 정보들이 많았고, 남자는 책자를 읽어보고 선임들에게 질문도 해가며 지식을 흡수해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한 두 시간정도 공부를 한 후에는 여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문득 그림이나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사무실 구석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종이 더미 중에 한 장을 집어 책상위에 놓고 펜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선임에게 혼났다.

나 참. 할 일도 없는데. 남자는 항의하는 뜻으로 선임에게 살짝 눈꼬리를 올린 후에 주위를 가리켰다. 여기저기 핸드폰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선임은 한 숨을 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그림을 적당히 눈치를 봐가면서 그리는 수 밖에 없었다.


펜화는 처음이었기에, 남자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물감이나 연필은 위에 덧칠을 하거나 지우개로 지워낼 수 있지만, 펜은 지워내거나 덧칠을 하는 등 수정의 방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뭘 그릴까...남자는 나무를 그려보기로 했다. 나무는 남자가 좋아하는 피사체중 하나였다.

나무를 그리다 보니 왠지 조금은 음침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검정과 흰색 밖에 없는 것 때문일것이다. 남자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왕 음침해진 분위기를 타 좀 더 음침하게 그려보기로 했다.


음침한 나무들. 그 사이의 길...그리고 깨진 벤치.


다행히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집중력을 많이 요하는 일이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남자는 약 두 시간동안 재밌게 그림을 그려나갔고, 퇴근을 약 한 시간 앞둔 후에는 그림을 완성 시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남자는 그림을 책상 위에 놓고 촬영해보았다.

남자가 그린 그림. 크기가 지갑 정도의 작은 그림이다.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즐거웠다. 뭐. 사실 그것도 있지만 지루한 회사 생활에 하나의 소소한 재미를 찾았다는 것이 의미가 더 크겠다.


남자는 앞으로도 회사에서 자그마한 그림들을 그려보기로했다. 재미도 있고, 남자의 그림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꽤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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