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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Dec 18. 2017

일상 - 2017.12.17

재미 들린 펜화, 그리고 카페

일을 해야 될 시간이다. 남자는 기계 앞에 앉았다.


남자는 최근 어떤 일을 할당 받았는데 그것은 기계가 검사를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는 역할이었다. 기계는 대채로 착실히 일을 해나갔으나 가끔 오류를 내거나 제멋대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남자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기계도 사람들이 말하는 만큼 뭐랄까.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기계는 한번에 약 15~20분 정도 시간이 걸리는 일을 했는데, 그동안에는 남자가 할 일이 없었다. 때문에 남자는 다시 종이조각과 펜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자는 최근 펜화에 빠져 있었다. 일을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남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으며(그림은 늘 최고야! 짜릿해! 완벽해!)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린다면 일 년이면 얼마나 많은 그림들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단순한 흑과 백의 세계가, 그 나름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무엇을 그릴까. 하는 고민중에 기계가 위잉-. 소리를 내었다. 한 번의 작업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남자는 기계가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을 직접 조작해서 해결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

가로등을 그려보자. 일단 남자는 가로등 하나를 그렸다. 가로등을 그린 후에는...도로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아니, 다리는 어떨까? 아니. 역시 도로가 낫겠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갔다. 남자는 도로를 그린후에, 집을 그렸다. 집을 세 개 그린 후에는, 집 앞에 각자 서 있는 남자와 여자를 그리려고 했으나, 그림을 본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람은 그리지 않기로 했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남자는 그동안 했던 일을 정리하고, 종이를 조심스럽게 집어들고 옷을 갈아입으러 나갔다.


눈이 오고 있었다. 남자는 눈이 점점 쌓이는 야외 흡연실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퇴근 후에 무엇을 할 지 고민했다. 흐음. 간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볼까. 남자는 평소와 다른 방향의 퇴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최근 일이 없는 탓인지, 버스는 한산했다.

치익-. 카페 앞에서 버스가 멈췄다. 남자는 최근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의 공략 영상을 보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남자 하나를 내려놓은 버스는 눈 때문에 질척해진 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며 곧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카페 문 앞에서 발에 묻는 눈을 턴 후에 카페에 들어섰다.


남자는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품 속에서 그림을 꺼내서 잠시 그림을 살펴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문 앞의 사람을 그려야 하는 걸까. 남자는 흘긋 카운터 쪽의 바리스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리스타는 간만에 온 단골손님을 맞이 했는지, 카운터에 서 있는 손님들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남자의 커피가 언제 나올지도 의문이었다. 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상관없지. 남자는 사람을 그리지 않기로 했다.

남자는 커피를 마시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삼십 분 남짓한 시간동안 눈을 맞았기에 남자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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