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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Dec 27. 2017

일상 - 2017.12.27

미룰수 없는 일들

남자는 눈을 떴다. 어두운 방 안이었고 입구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잠시 남자는 기억을 뒤적였다.

어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1차에서는 족발을 먹었고 2차에서 오뎅탕을 안주로 술을 마셨다. 많이 마셨고 남자는 술집 화장실에서 토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근처에 있던 태국 마사지로 들어와 마사지를 받으며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음...남자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2시. 오늘은 야간 출근이다. 남자는 마사지를 받을 때 입었던 옷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태국 마사지샵을 나섰다.


최근 브런치에 꽤 오래 글을 쓰지 않았다. 아마 일 주일은 족히 넘어간 것 같았다. 남자는 브런치 앱을 켜서 몇 몇 작가분들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른 후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국 마사지샵은 2층이었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인 후(2층에 올라왔다는 것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민망했기 때문이었다)계단을 통해 1층으로 걸어나왔다.


매서운 찬바람이 남자를 맞았다. 남자는 잠시 헉-. 하고 놀란 숨을 들이켰고 지난 밤 술로 인해 어지러웠던 머리가 조금은 정돈이 되는 것을 느꼈다.

최근 참 술을 많이 마셨다. 남자는 약간의 술이라면 즐기는 편이었으나 공장 사람들은 술을 참 좋아했기에 삼일에 한번, 내지는 사일에 한 번 정도. 약 일 주일에 두 번정도 마시는 편이 되었다. 게다가 연말이라 그런지 좀 더 속도가 붙어 조금은 더 자주 마시는 것 같았다. 이틀에 한 번 정도. 남자는 죽을 맛이었다.


최근 남자는 안정된 일상을 향유하고 있었다. 잠시 회사가 일이 없어졌었지만은 새로운 검사법이 개발되었고, 남자의 부서는 다시 조금이나마 활기를 띄게 되었다. 구조조정의 위기는 없어졌고, 다시 계속해서 근무를 하게 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일, 운동, 그림, 소설, 브런치 등을 즐길 수 있는 일상에서 남자는 술자리를 자주 가짐에 따라 일상의 균형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술을 마신 날에는 앞에 나열한 다섯가지의 일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남자가 포기한 것은 운동이었다. 나머지는 그럭저럭(?) 할 수 있다 하더라 치더라도,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동을 하는 것은 꽤나 큰 실수가 될 것임은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포기하는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으나, 나머지 일들을 포기하는 것에는 그다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핑계를 대며 나머지의 일들에도 점점 소홀해져만 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과 술, 잠으로 나날을 보낸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 남자는 일상의 늪에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오늘, 남자는 안산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리에서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다시 해야함을 느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 남자는 일단 방청소를 시작했다. 바닥을 쓸어 먼지와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넣었고, 싱크대 앞에 놓여있던 상자안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들과 쓰레기통에 담겨있던 일반 쓰레기들을 모아 밖에 내다버렸다.

청소를 끝내고 난 후에는 얼마전 구입한 전기 밥솥에 쌀을 씻어 취사를 하며 브런치에 올릴 글에 넣을 월급과 근무표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밥이 완성되었다. 전기 밥솥은 1~2인용의 아주 작은 밥솥이었는데, 기대한 것 보다 더 좋은 밥이 완성된 것 같아 남자는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 남자는 인터넷으로 식재나 가재도구 따위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산 것들이 그 이상의 성능의 발휘하는 것. 즉 가성비가 높은 것들을 구매하는 것에 푹 빠져있었다. 이번 구입한 전기밥솥도 그 중 하나에 속했다.


브런치에 '공장 생산직에 관한 이야기 - 세 번째 월급'을 올리고 나서, 남자는 천장에서 진라면 매운맛을 꺼내 라면을 끓였다.

라면, 쌀밥, 총각김치(얼마전에 조장이 남자에게 준 것이다)로 식탁을 꾸린 남자는 컴퓨터앞에 음식들을 차려놓고 식사를 하며 인터넷을 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슬픈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남자는 그 슬픈 기사들을 읽다가, 우울해질 것만 같아 유투브로 들어가 음식 조리에 대한 동영상들을 시청했다.

식사를 마치고 게임을 잠깐 한 남자는 잠깐 시계를 보았는데, 어느덧 시침이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야간 근무를 위해서는 좀 더 잠을 자야될 것 같은 생각에 남자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이불속에 몸을 묻었다. 남자는 잠에 들기 전에,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차례차례 진행하면서, 일상의 늪에서 빠져나올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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