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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Dec 30. 2017

일상 - 2017. 12. 28

펜화와 밥상을 차리는 것. 그리고 찾아온 통증에 관하여

날카로운 통증이 있었다. 오른쪽 가슴의 측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날카로운 바늘로 근섬유의 안쪽을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잠깐 바빠졌던 것처럼 보였던 회사는 다시 한가해졌고, 열 명이 출근을 하면 여덟은 앉아서 노는 상황이었다. 남자는 주로 구석에 혼자 앉아 종이쪼가리에 펜화를 그리거나, 가끔 사람들의 대화에 참여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담배를 피웠다.


통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남자는 고민을 해보았다. 최근 운동을 했으나 운동후에 느껴지는 근육통의 종류는 아니었다. 혹시나 담배 때문인건 아닐까? 남자는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 담배도 참 오래피웠지. 많이도 피웠고. 남자는 아마 담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끝나고 망년회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남자는 선임에게 잔업을 빼겠다고 요청했다. 선임은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남자는 가슴의 통증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은 선임은 잔업을 빼주었다.


버스정류장에거 내리니 시계는 오전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몸이 아플수록 더 잘 챙겨 먹어야한다. 지금은 아파도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까.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잠시  버스정류장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장을 보러 식자재마트로 향했다.

남자는 식탁을 구상해보았다. 굴을 넣은 미역국과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주문한 고기를 삶고, 마찬가지로 삶은 양배추와 쌈장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남자는 잘려져 있는 마른 미역과, 약간의 소금, 작은 참기름 두 병(6900원짜리였으나 2900원에 할인 하고 있었다), 식용유 1L, 중간 크기의 국간장, 생굴 300g, 양배추 한 통을 샀다. 잠시 주류쪽을 쳐다보던 남자는 청하 한 병을 집어들었다. 반 병정도는 수육을 할 때 넣으면 냄새를 잡아줄 것이고, 반 병 정도는 쉽게 잠이 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집에 도착한 남자는 방청소부터 시작했다.창문을 열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바닥을 쓸면서  1차적으로 청소를 끝낸 남자는 요리를 시작했다.

일단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릴 수육부터 준비했다.

냉장고에 넣어서 자연해동한 삼겹살 한 덩이를 꺼냈다. 진공포장지를 뜯고 상태를 살핀후에, U자로 생긴 찜 받침대에 올려놓고, 양배추를 4등분 해 그 옆에 올렸다.

그 후에 큰 냄비에 고기가 닿지 않을 만큼 물을 붓고, 청하 반 병을 부었다. 그리고 냄비에 찜 받침대를 넣은 후에 뚜껑을 닫고 불을 켰다.

자른 미역을 한 움쿰 꺼내 그릇에 담고, 수돗물을 부었다. 미역이 불기를 기다리며 생굴을 소금물에 몇번을 반복하여 씻어내었다. 생굴은 손질이 어려운 식자재중 하나였다. 너무 많이 씻거나 소금물의 농도가 옅으면 맛이 아주 밍밍해졌다. 반대로 너무 씻지 않으면 바다의 찌꺼기가 굴에 남아 맛과 미관에 아주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물에 소금을 타고, 굴을 넣어 씻어내고, 더러워진 물을 버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굴을 씻어낸 물이 어느정도 깨끗해졌다고 판단한 남자는 미역이 어느정도 불었는지 체크했다.

좋아. 적절해. 남자는 미역도 소금물에 씻어낸후에 물기를 짜고, 중형 냄비를 꺼내 참기름을 약간 두른 후에 미역을 넣고 불을 켰다.

미역을 볶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강불을 유지하며 미역이 가진 육즙(아니 해즙이라고 해야하나?)을 뽑아내야했고, 미역이 혹시라도 타면 낭패였다. 남자는 나무 숟가락으로 계속해서 미역을 볶았고, 미역에서 흰 국물이 조금씩 우러나오는 것 같자 냄비에 물을 받고, 물이 끓기 시작하자 굴을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간을 맞추는 일이다. 남자는 국간장을 꺼내 세 스푼정도 넣고 맛을 보았다. 약간 심심한 맛이다. 적절하네. 오늘의 요리는 성공적인 것 같았다. 이정도면 앞으로 이틀은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차려낸 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아침 9시가 되어 있었다. 아직 가슴의 통증이 가지 않았기에, 남자는 무거운 마음과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은 남자는 한 개비를 빼어물고 불을 붙였다. 어쩌면 마지막 담배가 될지몰라 아파오는 가슴을 붙잡고 필터 끝까지 빨아들였다.


병원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다행이도 이 곳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빠르게 진료를 진행했고, 곧 남자의 순서가 왔다. 남자는 의사에게 남자의 증상을 설명했고, 의사는 갈비뼈의 상태와 폐의 상태,그리고 심장의 상태를 알기 위해 엑스레이와 심전도 검사를 추천했고, 10분도 걸리지 않은 검사 후에 남자의 상태가 나왔다.

이상없음. 의사는 아마 근육이 놀란 것 같다며(남자는 아마 헬스장이 원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육이완제를 처방해주었다.


남자는 병원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꽤나 맛있는 담배였다.


쉬고 싶은 곳.


남자는 28일에 겪었던 일들을 쓰다가, 문득 27일날 그렸던 펜화를 브런치에 올리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28일에 겪은 일상이지만, 이 글에 펜화를 올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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