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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Jan 13. 2018

일상 - 2018.01.13

밀려가는 하루와 다짐에 관하여

남자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오후 5시.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몸의 피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해야할 일들이 있었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미루기에는 너무 오랜시간동안 쌓여있던 일들이다.


남자는 쌀을 씻어놓고 화장실에 들어섰다. 거울을 보니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이 시야에 들어왔다.

먼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샴푸로 머리를 감은 다음 충분히 몸이 뜨거워졌다고 판단이 되자 어제 장을 보며 사 온 쉐이빙 폼을 수염이 난 부위에 골고루 바르고, 면도기로 면도를 시작했다.

면도날은 다치기에 충분할 만큼 날카로웠기에, 심혈을 기울여 면도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기분나쁜 고통과 함께 피가 흘러내릴 것이기에.

일상은 단조로웠으나, 늘 조심해야 될 구간들이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은 늘 피곤한 것일지도 몰랐다.


샤워와 면도를 끝낸 후에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며 핸드폰으로 근처의 미용실을 검색해보았다. 적당한 미용실을 찾아 전화로 예약하고, 옷을 대충 입고 페브리즈를 뿌린후에,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세워둔 차에 몸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남자는 최근 새로운 차를 알아보고 있었다. 현재 남자가 타고 다니는 트라제 2007년식은 아직 주행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확실히 낡은 차량이었다. 주행거리 15만km가 넘어가면서, 차량의 진동이 많이 심해졌으며 오래된 차 특유의 불쾌한 냄새, 오래된 시트의 딱딱한 승차감. 오디오는 카세트가 달려있었고, 사이드 미러는 손으로 접었다가 펴야했다.

요약하자면 이래저래 불편한 차량이었다.

남자는 다음달이면 이제 계약직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계약직부터 나오는 상여금을 생각했다. 이번년도가 되며 오른 최저시급과 상여금을 합치면 이제 월급이 300이 넘어가겠구나. 남자는 신차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한 시간 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미용실에 도착했다. 미용실의 규모는 제법 컸으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남자는 여성 디자이너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미용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리에 앉기전 외투를 받아주지도 않았고, 가위가 귀를 살짝 씹었으며(심지어 사과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감겨줄때는 시릴만큼 차가운 물이 나왔다(마찬가지로 온도가 적당한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자가 주문한 머리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짜증이 솟구쳤으나, 이때 쯤 이미 이발은 완료된 상태였고 그저 다음에는 이 곳을 오지 않으리라는 마음만 먹었다.


미용실의 아래층에 남자가 가끔 들리던 카페가 있어 들렸다. 카운터에 배치되어있는 원두들의 향을 맡아보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골라 핸드드립으로 내려달라고 요청한 후에 자리에 앉았다. 카페는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이 남자보다 어려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 마주보며 웃었고, 웃음소리가 즐거워보였다.

남자는 문득 한 살 더 많아진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고, 보이는 풍경에 생소함을 느꼈다. 나에게도 저런 풍경이 존재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지.

남자의 현재 일상은 회사일과 퇴근, 식사 준비와 샤워, 글과 그림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풍경의

일상도 분명히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커피가 나왔다. 아쉽게도 카페에서 마시고 간다고 말을 했지만 일회용잔에 담겨 나온 커피를 보며, 남자는 오늘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커피를 마시며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흥에 온지 4개월이 지나고 있었고, 새해가 온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착실히 일을 하고 있었고, 계약직이 다음달로 다가왔으며, 얼마전 '에스뚜체'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브런치에 올렸다.

어느정도 성과는 올렸지만, 남자의 목표보다는 미진한 효과였다. 아마 피곤을 핑계로 한 나태한 하루들이 남자의 목표달성을 막아선 탓일 것이다.

남자는 딸기 타르트를 추가로 주문하고,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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