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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Feb 01. 2018

일상 - 2018.01.30

의미가 없는 나날들

구조조정을 당하고 나자, 남자의 마음은 의외로 후련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동안 일이 없었을 때 너무 회사의 눈치를 보았던 탓이었던 걸까. 게다가 월급도 들어왔다. 260만원. 남자가 당분간 지내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금액이었다. 온갖 비용을 다 내고 나도 130~140언저리의 금액이 남을 것이다. 충분하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남자는 일단 청소를 하기로 하였다.

남자는 이불과 베개 등을 한 구석에 접어 놓고, 입었던 옷들은 하나를 빼고 다 세탁기로 가져가 돌렸다. 텅 비어버린 바닥을 빗자루로 쓸던 남자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남자는 제주도 여행과 부천을 가는 것. 두 가지 생각을 저울질 하기로 했다. 

빗자루에서 시작한 고민은 걸레질에서 끝났다. 결국 남자는 부천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제주도 여행을 간다고 할 시에는 적어도 십 만원이 넘는 금액이 지출이 될 터인데 그 금액이 가벼운 금액은 아닐 것이다.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시 취업을 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고.

청소를 끝내고 간단한 짐(핸드폰 충전기와 읽을 책 등이 들어있다)을 싸서 가방에 둘러맨 남자는 이불과 베개피 등을 들고 난방과 전기를 다 껐는지 확인을 한 다음 집을 나섰다. 그동안 옷이나 양말, 수건등은 세탁기로 계속해서 세탁을 했지만, 규모가 큰 이불은 세탁을 하지 못했기에 이불과 베개피 등은 세탁소에 맡길 예정이었다.

세탁 비용은 총 삼 만원, 시간은 이틀이 소요 될 예정이었다. 어차피 이불과 베개가 없이 잠이 들기는 힘들 것이다. 세탁이 완료 될 때까지 부천에 있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세탁비를 결제한 후에 부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원래 그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예상보다 부천에 삼 일을 더 있었다. 그러므로 약 총 오 일을 부천에 있었던 셈이 되었는데 그동안 남자를 무엇을 했는가.

글쎄. 오일 중에 삼일은 집에 틀어박혀 핸드폰 게임만 했다. 남자의 컴퓨터는 시흥에 있는 원룸에 두고 왔기 때문에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늘어지게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공룡들이 뛰어노는 가상의 세상 안에서 음식을 만들고, 건물을 짓고, 공룡들을 사냥하여 그들을 도축하고 나오는 재료들로 갖가지 물건들을 만들어댔다. 글쎄. 그 가상의 세계에 한 삼 일이 훅-. 지나간 것 같았다.

의미가 전혀 없는 나날들이었다.

글쎄. 남은 이틀은 무엇을 했는가. 남자는 책을 사고 좋아했던 카페를 가고 친구들을 만나서 축구 게임을 약간하고 맛있는 고기와 술을 사 먹었다.


전혀 의미가 없는 나날들이었다. 돈은 조금씩 줄어갔고 남자는 돈을 벌지도, 예술 작품을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참 편안하고 행복했다.

남자는 오일 째 되는 날, 부천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지쳤던 남자의 마음이 100%로 다시 충전이 되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남자도 모르게 지치고 무너졌던 마음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 용기와 힘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자는 문득 생각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상보다 이런 전혀 의미 없는 나날들이 남자의 인생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하루에 열 시간씩 늘어지게 자는 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향긋한 커피. 갓 구운 촉촉하고 부드러운 케이크. 신나는 모험의 세계. 좋은 소설. 친구들. 내 지시대로 움직이는 멋진 축구 선수들. 달콤한 술.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삼겹살. 하루의 모든 것을 그 하루에 걸정하는 그 성스러웠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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